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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17 22:38 수정 : 2011.07.18 15:03

1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동국대 일산병원 영안실에서 지난 2일 이마트 탄현점 냉동기 보수작업을 하다 숨진 서울시립대 학생 황승원씨의 여동생이 오빠의 영전에 잔을 올리고 있다. 고양/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겨레in]
‘이마트서 질식사’ 황승원씨 여동생이 본 오빠
오빠가 남긴 대출금 고스란히 엄마·여동생 몫으로

제대 뒤 일자리 얻고선 “복학 전까지 바짝 벌어 대출 갚을거야” 말했는데…

업체들 사망책임 다툼에 16일째 장례식도 못 치러

“오빠 편안히 갈 수 있게 어른들이 책임졌으면”

오빠가 죽은 지 벌써 16일째다. 17일 문상객의 발길도 끊긴 동국대 일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검은 상복을 입은 황수진(가명·16)양이 오빠 승원(22)씨의 영정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이구, 내 애기.” 생전에 여섯살 어린 동생을 ‘애기’라고 부르며 귀여워하던 오빠가 사진 속에서 착한 미소를 짓고 있다. 오빠는 지난 2일 새벽 경기도 고양시 일산 이마트 탄현점에서 냉동설비를 수리하던 중 질식사했다. 이날 오빠까지 4명이 숨졌다.

지난 5월18일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오빠는 분주했다. “복학하기 전까지 바짝 벌어서 학자금 대출부터 갚을 거야.” 오빠는 세종대 호텔경영학과를 다니던 1년 동안 등록금 때문에 1000만원 가까이 빚을 졌다. 악착같이 공부한 끝에 2학년 1학기에는 전액장학금을 받게 됐지만, 다시 수능을 치러 등록금이 절반 수준인 서울시립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등록금 부담을 덜었어도 1000만원의 학자금 대출은 오빠를 숨막히게 했다. 한 학기를 다니다가 군에 입대한 오빠는 군 복무 중에도 월급 5만원을 집으로 부쳤고, 휴가를 나와서도 인력사무소를 찾았다. 엄마가 건넨 용돈 3만원을 책상 위에 남겨두고 복귀하는, 오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제대 직후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를 살펴보던 오빠는 “동네에 있는 냉동설비 수리업체에서 사람을 뽑는다”며 반가워했다. 면접에 합격한 오빠는 “월급이 150만원이나 된다”고 기뻐하면서 출근했다. 처음 며칠 동안 오빠는 퇴근할 때마다 온몸이 아프다며 끙끙거렸다. 수진이는 가만가만 오빠의 어깨를 주무르며 물었다. “오빠, 이렇게 힘든데 좀 편한 일 하면 안 돼?” 오빠는 그때마다 웃으며 말했다. “월급 150만원 벌 수 있는 데가 흔하지 않아. 복학할 때까지 넉달 동안 일하면 학자금 대출도 좀 갚고 등록금도 낼 수 있을 거야.” 오빠는 첫 월급 받던 날 용돈이라며 5만원을 건넸다. 수진이는 미안해서 받지 못했다.

오빠는 늘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어깨에 지고 살았다. 아빠의 사업 실패 이후 가족은 쫓기는 삶을 살아야 했다. 오빠가 중학생, 수진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이었다. 둘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엄마는 식당, 찜질방, 공장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서울 신당동의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짜리 반지하 집을 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부를 포기하지 못한 오빠는 검정고시를 거쳐 끝내 대학에 갔다.

수진이도 검정고시를 준비중이었으나, 공부를 도와주던 오빠가 이젠 세상에 없다. “다음달에 고졸 검정고시를 볼 계획이었는데…, 시험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며 수진이는 숨죽였다.


 오빠가 죽던 날은 토요일이었다. 엄마가 마침 쉬는 날이기도 했다. 엄마는 동네 한 영세 공장에서 완성된 제품에 라벨 붙이는 일을 하며 한달에 110만원을 벌었다. “이마트에 야간 작업을 간다”며 집을 나간 오빠는 아침이 돼도 돌아오지 않았다. 날이 밝고 한참이 지나 엄마 휴대전화에 오빠 번호가 떴다. “너 안 들어오고 뭐해, 어디야?” 높이 솟구친 엄마의 목소리에 답한 건 아들이 아닌 경찰이었다. 엄마가 몸을 벌벌 떨며 말했다. “수진아, 승원이가 죽었대.”

 열여섯 수진이에게 오빠의 죽음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빠의 장례를 왜 16일이나 치르고 있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오빠가 죽은 장소는 문에서 불과 열 걸음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장례식장에 온 오빠의 회사 동료는 “사고가 난 날은 여섯번에 걸친 냉동설비 보수작업의 마지막날이었다”며 “이마트 기계실은 환기도 제대로 안 돼 작업환경이 매우 열악했다”고 전했다. 수진이는 이마트쯤 되는 대형마트는 늘 깨끗하고 쾌적한 줄 알았다. ‘늘 깨끗하고 쾌적한’ 이마트를 만들려고 냉동설비를 고치다 오빠가 죽었다.

 냉동설비는 외국계 회사 트레인코리아가 이마트에 판 것이다. 세계 500대 기업 안에 드는 ‘부자회사’라고 한다. 유지보수는 신당동의 자그마한 보수업체인 오륜에서 담당했다. 오빠는 오륜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지 두달이 안 된 막내 노동자였다. 오빠가 죽던 날, 오륜의 사장님도, 경력이 오래된 선임자도 함께 사망했다. 트레인코리아 직원도 숨졌다. 이마트 터보냉동기를 고치다 죽었지만 이마트에서는 장례식장에 조화조차 보내지 않았다. “오빠가 이마트에서 일하다 죽었는데 이마트 책임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수진이의 한숨이 깊었다.

 죽을 때까지 오빠가 걱정했던 학자금 대출은 고스란히 엄마와 수진이의 몫으로 남았다. 늘 성실하고 착했던 오빠가 남긴 것이 빚뿐이라는 사실을 동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승원씨를 짓누르던 학자금 대출을 수진이 모녀가 갚지 않으려면 사망 직후 3개월 안에 법원에 ‘상속포기 신청’을 해야 한다. 상속을 포기하면 승원씨에게 주어질 보상금까지 전부 포기해야 한다. 현실은 ‘힘겨운 자’에게 더욱 냉정하다. 이마트는 경찰 수사 결과가 나와야 보상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애초 장례 비용을 지급하겠다던 트레인코리아 쪽과의 보상 논의도 헛돌고 있다. 결국 승원씨의 주검은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16일째 안치실 냉동고에서 얼어가고 있다. “승원아, 엄마 왔는데 왜 안 나와.” 엄마는 날마다 오빠의 주검이 누워 있는 안치실 앞을 맴돌며 오열했다. 최근 들어 엄마의 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먹은 음식도 모두 토했다.

 17일 오후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빈소를 찾았다. 이마트 탄현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온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소속 대학생들이었다. 조문을 한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힘내라”며 수진이의 손을 잡았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오빠는 공지영 작가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란 책을 선물했고, 어떤 언니는 검정고시 준비를 도와주겠다며 연락처를 주고 갔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열여섯살 수진이가 또렷하게 아는 건 하나뿐이다. “오빠를 이제는 보내줘야 한다”는 사실이다. “불쌍한 우리 오빠 이제 그만 힘들어하고 편히 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책임질 건 빨리 책임졌으면 좋겠어요.” 수진이가 고개를 숙였다.

박태우 임지선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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