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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02 22:32 수정 : 2011.06.03 10:04

한겨레 in


돌아오지 않는강-4대강 사망자 19명 전수조사

③ 목숨과 바꾼 포클레인

둑이 터졌다, 순간 강물이…

눈은 점심께부터 내렸다. 오후 5시, 경기도 여주군 한강 2공구 준설현장 서쪽 둑에서 평소보다 많은 물이 스며들었다. 현장소장은 작업 중단을 결정하고 무전기로 대피를 지시했다.

40여대의 포클레인·덤프트럭이 굉음을 토하며 빠져나왔다. 멀리 포클레인 한 대만 꿈쩍 않는다. 누군가 포클레인 엔진덮개를 열고 뭔가 만지고 있다. 옆에 무쏘 픽업트럭이 서 있다. 김제우다. 현장소장은 다른 덤프트럭 기사에게 무전을 쳤다. “저기 포클레인 기사 좀 태워 나와요.” 트럭이 급히 다가갔다. “다 끝나가요. 먼저 가세요.”

오후 5시30분께 둑이 터졌다. 강물은 울렁대며 쏟아졌다. 그제야 김제우는 자신의 무쏘로 뛰어가 올라탔다. 인부들은 둑 위에서 발을 굴렀다. 물살을 가르며 200m를 달렸다. 둑 위까지 20m 남았다. 바퀴가 무엇에 걸렸는지 멈춰섰다. 앞뒤로 몇 차례 움찔거렸다. 물이 차올라 시동이 꺼졌다. 김제우는 창문으로 빠져나와 차 지붕 위에 올랐다. 강물은 다시 발목까지 차올랐다. 그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포클레인 기사 권기철(가명)은 일 때문에 미뤄온 대장 용종 제거수술을 받고 인천의 한 병원에 입원중이었다. 오후 5시38분, 휴대전화가 울렸다. 제우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형님. 둑이 터져서 내 장비도 잠기고 나도 승용차 위에 올라와 있어요.” “빨리 현장사무실에 연락해야지, 왜 나한테 전화를 했냐.” “사무실에 벌써 연락했어요. 곧 조치하겠죠…. 어, 얼음이 와서 차를 치네요. 차가 흔들려요. 끊을게요, 형님.” 전화는 갑자기 끊겼다.

준설작업을 하다 포클레인이 물에 빠져 최종상(46)씨가 숨진 경남 함안군 칠서면 낙동강 18공구 바로 옆 19공구 현장에서 사고 엿새 뒤인 4월21일 오후 한 포클레인 기사가 구명조끼와 조력자없이 작업하고 있다. 물가 작업의 경우, 기사는 구명조끼를 입고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4대강 현장 곳곳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의령/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둑 안과 바깥의 수위 차이 때문에 무너진 둑으로 쏟아진 강물은 빠른 물살을 만든다. 가로 300m, 폭 120m의 사방을 흙으로 막은 둑은 물의 압력을 견디지 못했다. 커다란 얼음덩이가 제우의 무쏘를 때렸다. 차 지붕 위의 제우는 휘청거리며 균형을 잡았다. 둑 위에서 제우를 바라보는 40여명의 포클레인·덤프트럭 기사들은 어찌할 줄 몰랐다.

누군가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던진다. 빗나간다. 둑 바깥에 대피해 있던 포클레인 한 대가 시동을 건다. 둑 위로 올라온다. 용감한 포클레인은 무한궤도를 움직여 물이 차오른 경계까지 달려간다. 제우를 향해 일자로 팔을 쭉 뻗는다. 사람들은 11m나 되는 무쇠팔에 기대를 건다. 제우가 있는 무쏘에 닿지 못한다. 2m가 모자란다. 이보다 팔이 긴 포클레인은 없다. 거센 강물이 또다시 무쏘를 흔든다. 제우는 균형을 잃고 물에 빠진다. 허우적거린다. 딱 한번 물 밖에 머리를 내놓는다. 김제우는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한강 2공구, 4cm 눈이 내린날
임시물막이는 힘없이 터졌다

차가운 강물은 그를 삼키고
36개월의 할부금을 겨우 끝낸
그의 포클레인도 삼켰다

충남 서산 출생. 경기 양평 한강 2공구에서 포클레인 기사로 일했다. 아내와 초등학생 아들 둘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남한강 옆 경기 양평경찰서는 대도시 경찰서와 달리 한가로운 곳이다. 모처럼 경찰서가 북적였다. 한강 2공구를 맡은 원청업체 금강종합개발과 하청업체 호성건설 직원들이 불려왔다. 대형 장비 40여대가 대피하는 동안 제우는 왜 나오지 못했을까.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제 처지와 다름없는 제우의 사연을 잘 알고 있었다.

둑이 터진 1월23일은 제우가 한강 2공구에서 일하기로 계약한 마지막날이었다. 오후 4시에 제우는 일을 끝냈다. 무전기도 반납했다. 제우는 다음날 충남 공주 금강 쪽 4대강 공사 현장으로 옮겨갈 계획이었다. 대피 무전을 듣진 못했지만, 둑에 이상이 생긴 것을 제우도 알았다. 그런데 포클레인의 유압호스가 새고 있었다. 이대로는 포클레인을 움직일 수 없다.

제우는 포클레인을 둑 밖으로 옮기려고 수리를 시작했다. 그에게 달려온 동료 기사의 덤프트럭에 올랐다면 목숨을 구했겠지만, 제우는 그마저 물리쳤다. 그가 포클레인을 다 수리할 때까지 둑은 기다리지 않았다. 강물의 압력을 버텨주지 못했다.

임시로 강물을 막는 둑인 ‘가물막이’는 정해진 설계규정이 없다. 5년 또는 10년 빈도 홍수에 대비해 지어야 한다는 ‘건설현장의 상식’이 있을 뿐이다. 기상청 자료를 보면, 지난 1월23일 한강 2공구가 있는 양평 인근에 적설량 4㎝의 눈이 내렸다. 강수량으로 환산하면 3㎜다. 그 정도의 눈에 가물막이는 무너졌다. 양평경찰서는 금강종합개발과 호성건설의 현장소장 두 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사고 다음날 아침, 기철이 남한강 현장에 도착했을 때 제우를 삼켜버린 강물은 꽁꽁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경찰과 소방서 구조대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저만치 얼음 위로 팔꿈치 부분만 삐죽 튀어나온 제우의 볼보460 포클레인이 보였다.

잠수부들이 얼음을 깨고 제우를 건져올리기까지 다시 하루가 지났다. “찾았다.” 1월25일 점심께, 잠수부들이 발견해 강가로 옮긴 제우의 주검을 기철은 차마 볼 수 없었다. 기철은 제우의 젊은 아내가 건설사와 벌인 보상금 협상을 거들고, 그동안 제우가 일한 돈을 받아주었다.

바닷모래를 포클레인으로 실어 나르는 인천의 어느 현장에서 기철은 군대를 갓 제대한 제우를 만났다. 20여년 전이다.

9살 아래 제우는 성실했다. 그를 친동생처럼 아꼈다. 3년 전 제우가 2005년식 중고 볼보460을 1억7000만원에 살 때도 조언해줬다. 한 번에 13.8t을 들어올리는 46t 무게의 최중량급 포클레인이었다. 월 400만원씩 납입해 36개월 할부를 다 갚은 것은 지난해 말이다. 이제부터 일해서 받는 돈 그대로 자기 돈이 될 터였다. 제우의 좋은 시절은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제우의 장례를 마치고 기철은 경북 구미 낙동강 준설현장에 갔다. 제우의 포클레인과 같은 볼보460을 몰았다. 한 시간에 5만원, 하루 10시간 일하면 50만원을 받는다. 주말에도 쉬지 않는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대목이다. 김치찌개를 밥에 비벼 먹고, 인부들이 잠을 청하는 구미 금오시장 골목 안 여관으로 향한다. 한 집 건너마다 반라의 여자 사진을 걸어놓은 노래주점이 있다. 모처럼 지갑 두둑해진 4대강 노동자를 유혹한다. 기철은 혼잣말을 내뱉었다. “돈지랄이야.”

유신재 박수진 송경화 기자 ohora@hani.co.kr


구조물에 깔려… 덤프트럭에 치여…

김진국씨는 지난해 11월29일 한강 6공구에서 비계를 해체하던 중 떨어지는 발판에 깔려 숨졌다. 지방대학을 나와 작은 가게를 운영하다 외환위기 때 폐업했다. 아내와 함께 고향 강원도 둔내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배추·상추 농사는 5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딸에게 매달 80만원을 보내야 했다. 지난해 가을 수확을 마치고 찾아간 원주 문막 인력사무소는 4대강 공사장 밤샘 일을 소개했다. 저녁 7시부터 오전 8시까지 일하고 낮일의 갑절인 일당 15만원을 받았다. 아내는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골프장 식당에서 부업을 하여 월 120만원을 벌었다. 이제 아내는 대학생 딸과 내년에 대학 갈 아들을 혼자 보살펴야 한다.

김충한씨는 공사현장에 간 첫날 숨졌다. 지난 3월11일 낙동강 안동댐 하천공사 구간에서 덤프트럭에 치였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김씨는 평생 특별한 직업이 없었다. 결혼 한달 만에 이혼해 자식도 없다. 감전사고로 한쪽 팔을 잃은 동생과 함께 보증금 200만원, 월세 30만원짜리 집에 살았다. 동생은 전국 축제현장을 다니며 국밥을 팔았다. 동생의 아내는 지난해 10월 쓰러져 식물인간이 됐다. 김씨는 “신호수 일을 시작했다”며 아침밥을 먹고 나간 지 1시간 만에 숨졌다.

류성원씨는 지난해 9월15일 한강 4공구에서 중장비 이동을 안내하는 신호수로 일하다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 면사무소에서 퇴직한 뒤 양돈업을 하다 빚을 졌다. 이후 농한기마다 공사현장에 나갔다. 류씨의 아내는 남편을 잃은 뒤 우울증을 앓고 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많은 비가 내린 지난 5월26일 오후 경북 상주시 중동면 낙동강 33공구 공사현장에서 포클레인들이 준설작업을 하고 있다. 상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4대강 동시다발 공사로
중장비 ‘폭발적 증가’
완공뒤 일감 끊기면?

공기를 최대한 단축시키려는 건설사의 요구와 고가의 장비가격을 최대한 빨리 회수하려는 중장비 기사들의 처지가 맞물려 4대강 현장의 하루 작업시간은 대부분 10시간이 넘는다. 공정거래위원회 표준계약서는 작업시간을 하루 8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관급공사 현장에서 공정위 표준계약서 체결을 의무화하고, 장비기사들의 임금체불을 방지하기 위해 하청이 아닌 원청업체가 직접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건설산업기본법·건설기계관리법 개정안을 지난 1일 발의했다.

4대강 공사를 동시다발로 추진하면서 건설기계의 과잉공급에 따른 후유증도 우려된다. 특히 덤프트럭의 경우 4대강 공사가 본격화한 2009년 등록대수가 5만3161대로 전년에 비해 1575대(3.1%)가 늘었다. 그 이전 5년 동안 덤프트럭 등록대수는 13대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강기갑 의원은 “4대강 공사가 끝나면 일감이 떨어져 기사들이 할부금을 갚지 못해 파산하거나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 4회 ‘저무는 강, 외로운 뱃사공’에서는 가족과 헤어져 평생 외롭게 사는 건설노동자들의 사연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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