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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5.19 21:41 수정 : 2011.05.20 17:18

④ 하나님의 이름으로

대전 카이스트 학생회관에는 이슬람과 기독교가 공존한다. 흰색 벽돌의 학생회관 2층 219호는 동아리 ‘이슬람회’ 방이다. 국내 대학 가운데 공식 이슬람 동아리는 이곳이 유일하다. 한층 위 304호에는 ‘카이스트 교회’가 있다. 다른 기독교 동아리도 같은 층에 있다. 무슬림 학생들은 2층 동아리 방에서 ‘살라’(예배)를 한다. 기독교 학생들은 목사가 상주하는 3층 교회에서 기도한다.

넌 기독교, 난 이슬람 카이스트는 공존지대

카이스트의 무슬림 유학생은 150여명이다. 전체 카이스트 유학생 가운데 30%다. 하루 5차례 기도 시간이 되면, 무슬림 유학생들은 실험실 밖으로 나온다. 복도 구석이나 벤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다시 실험실로 들어간다. 무슬림들이 나란히 머리 조아린 벤치 앞을 기독교 학생들은 덤덤하게 지나간다. 학생회관 2층 219호 ‘이슬람회’ 동아리방은 ‘무살라’(소규모 예배소)를 겸한다. 터키와 가나 출신 무슬림 교수들도 동아리방을 찾아 예배한다.

카이스트 학생회관 3층엔 교회가, 2층엔 무슬림 예배소가 있다. 함께 공부하고 파티도 한다. “나눠 놀 이유가 있나요?” 종종 교리논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인간적 배척은 없다.


지난 4월 22일 서울 한남동 한국이슬람 서울중앙성원에서 어느 무슬림이 예배 도중 두 손을 모아 꾸란(코란) 구절을 암송하고 있다.

이슬람 동아리 대표 아딜(27)은 파키스탄 출신이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으면 한국에서 일할 생각이 있다. 카이스트를 졸업한 여러 무슬림이 이미 한국에서 취직해 일하고 있다. 그들을 한국에 머물게 한 것은 한국 대기업들이다. 카이스트 기독교 동아리 ICF 대표 이동형(23·화학과)씨는 무슬림 학생들을 칭찬했다. “아이디어가 날카롭고, 영어도 잘하고, 술도 마시지 않으니, 공부를 열심히 해요. 한국 기업들이 탐낼 만한 인재들이죠.”

이씨가 대표로 있는 동아리는 한달에 한번씩 외국인 학생들을 초대해 파티를 연다. 힌두교도 인도 학생, 무슬림 파키스탄 학생도 초대한다. “스스로 찾아오는 이슬람 학생들에게 왜 전도를 안 해?” 어느 목사가 물었다. 이동형씨는 굳이 그럴 생각이 없다. “그 친구들이 꾸란을 들고 (전도하러) 파티장에 오는 것도 아니고…. 우린 기독교와 이슬람으로 나눠 놀지 않거든요.”

전도에 적극적인 기독교 학생도 있다. 그들은 무슬림 학생의 기숙사 방을 가끔 방문한다. 기독교 책자를 나눠준다. 종종 끝도 없는 논쟁이 벌어진다. 이슬람의 ‘알라’는 하나님을 뜻하는 아랍어다. 예수와 무함마드 모두 하나님의 예언자라고 본다. 이슬람은 예수·무함마드 등 예언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종교라고 무슬림은 생각한다. 기독교 신자인 이씨의 생각은 다르다. “이슬람의 하나님과 ‘우리’ 하나님은 달라요. ‘알라’는 일종의 왜곡된 신이죠.”

이를 둘러싼 캠퍼스의 교리 논쟁은 치열하다. 그러나 인간적 배척은 없다. 종교 논쟁을 벌인 다음날, 학생들은 실험실에서 함께 시료를 섞으며 웃는다. “무슬림 유학생 역시 학업에서 ‘경쟁자’죠. 그뿐이에요. 다들 각자 공부하기 바빠요.” 이씨가 말했다.

캠퍼스를 벗어나면 양상이 바뀐다. 2000년대 후반 들어 한국 이슬람을 둘러싸고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2008년 ‘이슬람이 몰려온다’는 영상물을 만들어 일선 교회를 중심으로 배부했다. “이슬람이 한국을 이슬람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기에 … 국가안보상의 위험에 미리 대비하여” 만들었다는 자막이 나온다. 무슬림 남편에게 코가 베이고 눈이 뽑힌 여성들의 사진이 나오고,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자비한 테러, 종교적 학살 등 이슬람은 결코 평화의 종교가 아니다”라는 자막도 나온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우리 후손의 미래가 달린 문제”라고 끝을 맺는다.

합동예배 때 무슬림은 남녀가 따로 모여 기도한다. 모르는 남녀의 신체접촉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무슬림들은 설명한다.

캠퍼스 밖 세상은 다르다. 종교적 논리에 인종·관습에 대한 이질감이 더해져 이슬람에 대한 경계·혐오가 확산된다. 유엔을 포함해 이슬람을 둘러싼 긴장은 세계적 현상이다.

한국 무슬림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무자비한 테러·명예살인은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일은 아주 예외적이고,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일 뿐이죠.”

이후 기독교 각 교단에는 이슬람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매년 여름 ‘라마단’(단식) 기간이 되면, 한남동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에 몰려와 ‘땅밟기’를 하는 기독교 신자들도 생겼다. 아랍국가를 중심으로 해외 선교 활동을 펼치는 ‘인터콥’의 최바울 본부장은 2009년 1월, 인터넷 매체 <독립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촛불시위 했던 사람들을 비롯해 국내 친북좌파들은 이슬람과 심리적·정치적 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슬람에 대한 경계·혐오는 종교적 논리에 인종·관습에 대한 이질감이 더해져 확산된다. 무슬림 이주노동자의 범죄는 혐오 정서에 기름을 붓는다. 인터넷에는 ‘이슬람 범죄 피해자 모임’ 등의 카페가 개설되어 있다. 이들 카페는 이주 무슬림들이 한국 여성을 강간하거나 사기결혼을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4주에 걸쳐 만난 50여명의 한국 무슬림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그건 일부, 아주 예외적인 경우예요.” 2005년 귀화한 최무빈(38)씨도 같은 말을 했다. 최씨의 취미는 한글로 시를 쓰는 것이다. 아내 역시 파키스탄 출신인데, 한국에 온 뒤로 ‘히잡’을 벗고 외출하는 일이 잦아졌다. “쓰면 좋겠지만, 안 쓴다 해도 아내의 선택이죠.” 그에겐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다. “아들딸 모두 하나님의 선물인데, 한국 사람들은 왜 아들을 선호하는지 모르겠어요.” 모든 면에서 최씨는 개방적·현대적인 무슬림이다.

그의 고향은 파키스탄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한국의 ‘이슬람포비아’(이슬람 혐오)는 주로 파키스탄·방글라데시 출신 무슬림에게 집중된다. “얼마 전에도 파키스탄에서 ‘명예살인’(명예를 더럽혔다며 가족을 죽이는 일) 사건이 일어나 현지 방송이 크게 보도했어요. 아주 외딴 시골에서 일어난 사건이죠. 그걸 심각한 뉴스로 다룰 만큼, 대부분 파키스탄 사람들은 명예살인을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최씨는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에선 강간이 몇 초에 한번씩 일어나지만, 그렇다고 미국인 모두를 범죄자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것은 세계적 긴장이다. 유엔은 지난해 12월 총회에서 ‘종교 모독 금지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슬람회의기구(OIC)가 주도한 이 결의안은 종교(신도)에 대한 욕설·증오·차별·위협·탄압과 이를 부추기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며, 국가가 나서서 이를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 뼈대다. 무슬림에 대한 개인·집단·공공기관·기업·정부의 모욕과 차별을 겨냥하고 있다.

한국이슬람 서울중앙성원 3층에 여러 나라 출신의 여성 무슬림이 모여 예배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서방 국가들은 다른 내용의 결의안을 추진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지난 3월 ‘종교 자유 보장 결의안’을 채택했다. 미국·영국 등이 주도한 이 결의안은 “개인 인권과 종교 자유 보장”을 뼈대로 하는데, 이슬람 국가의 ‘명예살인’과 종교 박해 등을 겨냥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한국이슬람 서울중앙성원을 찾은 미군을 만났다. 호기심에 찾아온 미국 네브래스카 출신 백인 중위였다. “우리는 대테러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부대 안에 이슬람 성원과 ‘이맘’(이슬람 지도자)이 있고, 무슬림 군인도 많다”고 말했다. “내가 만난 모든 무슬림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어딜 가도 나쁜 사람은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한국에는 나쁜 사람이 없느냐”고 그는 물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 무슬림을 기다리던 그가 말했다. “세계적으로 무슬림이 늘어나는 이유가 궁금해. 정말 모르겠어. 구글에게 물어볼까?”

에필로그

한달간 인터뷰·방문·자료조사
‘한국 무슬림 삶’ 담담히 담아

지난 4월 초부터 이슬람 관련 연구·학위 논문 20여편을 포함해 각종 단행본과 언론보도를 검토했다.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안정국 교수, 부산외대 황의갑 교수 등 이슬람 전문가들에게 자문해 조언을 받았다. 4주에 걸쳐 50여명의 한국인·귀화·체류 무슬림을 만나 대면·전화 인터뷰를 했다. 서울·인천·경기도·충청남도의 이슬람 사원과 무슬림 가정을 방문했다. 한국인 이슬람 카페에서 서면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무슬림 20여명 대부분은 두 차례 이상 인터뷰했다. 당사자가 충분히 동의한 경우에만 실명으로 기사에 소개했다.

독자들은 전자우편·전화·인터넷 댓글 등으로 반응했다. 소수자를 배려·존중해야 하지만, 이슬람이 전파·확산되면 한국의 민주주의·양성평등·기본권 보장 등의 가치가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무슬림의 강력범죄와 사기결혼에 주목하라는 주문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 다녀온 불교신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국인 남성은 “그곳에서 마음이 따뜻한 무슬림들을 많이 만났다”고 전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동포는 “주류가 아니면 도태시키는 한국 사회에는 나의 것이 아닌 소수의 것이라도 배려하고 존중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어느 시민단체는 무슬림 2세들에게 한글책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한 교수는 “기사를 수업시간에 소개하고 토론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독자 가운데는 “너도 개슬람이냐” “반민족 매국노” 등 욕설과 “테러를 당하고 싶냐”는 협박 섞인 전화·전자우편을 보낸 이도 있었다. 한국 무슬림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찌 살고 있는지 담담하고 세밀하게 적어 독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실을 풍부하게 기사에 담았다는 설명을 어떤 독자는 좀체 납득하지 않았다.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 이슬람을 경계해야 한다는 정서는 미국·유럽 못지않게 한국에서도 강력했다.

송경화 안수찬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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