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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31 20:24 수정 : 2009.12.31 21:36

독재맞서 얻은 민주…‘법치 탈 쓴 독재’로 위기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4·19 50년, 5·18 30년] ‘민주주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좌담





‘민주주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좌담

올해로 4월 혁명 50돌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은 30돌을 맞는다. 1960년대 이래 한국 민주화운동의 전개와 민주주의 진전은 세계사적으로 귀감이 되는 사례였다. 그 결과 한국은 아시아 엔지오(NGO) 운동의 선진국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가 ‘민주정부 10년’의 성과를 부정하면서, 1987년 6월항쟁 이후 진전돼온 민주주의적 가치와 제도들이 후퇴하고 있다는 인식은 나름의 타당성이 있다. 이와 함께 민주파를 표방하는 정치·사회세력이 새로운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민주주의 위기의 중요한 측면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들어 몇차례 재보궐 선거에서 이겼다. 하지만 대안세력으로서의 존재감이 거의 없다. 최근 친노 신당의 창당 움직임으로 노무현 정부 세력은 분열에 들어갔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분당 이후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운동 진영도 다르지 않다. 일부 세력은 올해 지방선거 참여를 준비하지만, 이 과정서 시민운동의 정체성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서 시민사회운동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진보·개혁 진영’ 전체를 아우르는 연대 틀을 꾸리려는 시도는 있다. 그러나 모두를 끌어모을 만한 새로운 가치와 담론은 거의 개발되지 않고 있다. 새로운 담론 개발의 출발점은 아마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공과에 대한 평가작업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민주당에선 ‘민주정부 10년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었지만, 평가 논쟁은 불붙지 않는다. 알만한 사람들끼리 상처를 덧내고 싶지 않다며 서로 회피하는 탓이 크다. 이런 와중에 ‘진보정부 10년의 공과’ 자체가 대중들 사이에선 그냥 잊혀지고 말 가능성이 충분하다. 진보 학계도 비슷하다. “(참여정부 시절 왕성했던) 그 많던 진보 논객들은 다 어디로 갔나?”라는 한탄이 흘러 나온다.

새해 벽두에 좌담회를 마련했다. 4월 혁명과 광주민주화운동을 되돌아보며, 한국 민주주의의 현 상황과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보자는 뜻이다. 민주주의 미래와 관련한 공론의 장을 새로 열어젖히는 출발점이 되리라고 본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4월 혁명, 광주민주화항쟁,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와 앞날’을 주제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최형익 한신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조대엽 고려대 교수, 박창식 논설위원(왼쪽부터).

박명림 “공공성 해체되고 사회경제적 과두화 심화”
조대엽 “MB정부 들어 시민사회와 협치 시스템 훼손”
최형익 “유능한 민주주의 요구 커져…낡은 도식 버려야”

사회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문제를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세 틀에서 논의했으면 한다. 4·19 혁명과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울림이 무엇인지부터 짚어보자.

박명림 4월혁명은 단순한 부정선거 반대 차원을 넘어 냉전시대 동아시아 최대의 민주화운동으로서 세계사적 의의를 갖는 사건이었다. 4월혁명의 성공 기억은 그뒤 박정희·전두환 장기 독재에 대한 저항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민주화세력한테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저항적 자세와 열정 등을 남겼다. 독재자 쪽에도 제2의 광주 유혈사태 가능성을 단념시켜, 6월 항쟁이 성공하도록 하는 자양분이 됐다. 이런 역사와 함께 2010년을 맞으면서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이들 사건이 집합적 정신을 표상하는 비극과 관련된 까닭이다. 조봉암의 사형 이후에 4월혁명이 왔고 박정희의 암살 뒤에 광주민주화운동이 왔다. 지난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이 있었다. 격변이 없길 바라지만 어쨌든 올해를 넘기기 위해 특별한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최형익 4·19는 독재에 대한 항의 뿐만 아니라 경제발전과 민생에 대한 요구를 함께 갖고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10년간 새로운 중등교육을 받고 성장한 세대한테서 어떻게 먹고살지 막막하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한국 현대사는 4·19 때부터 이미 정치적 민주주의와 민생, 사회경제의 문제, 즉 유능한 국가에 대한 요구를 함께 갖고 있었다. 특히 1987년 이후 보수파든, 진보파든 유능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흐름이 더욱 분명하다. 단순히 민주와 반민주가 되풀이되는 식으로 보면 안된다.

조대엽 진보세력 한쪽에선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에서 제기되는 민주주의의 민족적 과제, 민중적 과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라고 본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통일민족국가의 과제, 해방과 분단체제 논의 등은 우리 사회를 국가주의적, 이념중심적 사회구조로 틀 짓는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이념지향적이고 국가중심적인 사회 운영방식은 아이엠에프(IMF) 이후에 빠르게 해체되고 있는 것 아닌가. 따라서 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도 과거와 달리 좀더 탈근대적인, 새로운 방식으로 제출된다고 보고 싶다.

사회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무엇으로 봐야 할까?

제일 큰 문제는 공공성의 해체다. 정당·언론·교육 등 공적인 담론 영역에서 공적 가치에 대한 합의가 붕괴됐다. 개인은 개인대로 불안하고 삶이 예측적이지 않게 됐다. 모두가 사적 이익을 확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 이유는 시장만능주의와 시장전체주의가 우리 사회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소중하고 존중돼야 하나 기업 영역을 넘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문제다. 그 결과 공익을 추구해야할 언론·의료·교육 영역까지 공적 영역이 붕괴하고 사회의 시장화, 사사화(私事化)가 나타난다.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사회경제적 과두화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 기업 논리가 사회화되니 금융, 유통 등 기업 최상위 서너개가 그 영역을 장악하고 최상위에 포함되지 못한 개인의 삶은 불안해지고 비정규화된다.

박 교수 진단에 동의한다. 하지만 해방 이후 공공적 관점, 서민이나 민중적 관점을 견지한 정권이 있었나? 나는 이명박 정부와 지난 10년 김대중·노무현 정부간 차이가 크지 않다고 본다. 지난 10년간 정치적 민주주의의 진전이 있었지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진전은 미흡했다. 김대중 정부의 아이엠에프 해법은 대표적으로 신자유주의 극약처방 패키지를 받아들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유고집에서 말하듯이 재임중에 불평등이 심화됐다. 현재 민주주의 위기를 가져온 원인 유발자는 지난 10년 정부이다. 민주당이 ‘지난 시기 우리는 민주주의였는데 지금은 비민주이니 다시 우리에게 정권을 맡겨주면 좋아진다’고 주장하면, 대중은 ‘민주주의가 밥먹여주냐’며 조롱조로 반론한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현 정치세력을 상대로 ‘과연 너는 누구인지,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재정의하는 게 필요하다.

공공성을 전통적 시각에서 고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국가가 공공성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사회구조가 더 이상 아니다. 공공성이 국가와 시민사회, 시장영역으로 고루 분점되는 사회변동이 진행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기존 공공성을 해체시키는 것은 맞지만 국가 중심의 공공성 해체 뿐아니라 공공성을 새롭게 다양화하는 흐름이 함께 나타난다. 이것을 공공성의 재구성 또는 공공성의 재구조화라고 개념화할 수 있다. 다만 이명박 정부 들어선 국가 중심의 전통적 공공성의 재독점이 나타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단순히 등치시킬 일은 아니다.

사회 조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문제도 좀더 미시적 측면에서 보는 것으로 안다.

참여정부에서 참여민주주의 방식을 상당히 동원했고, 정부의 개방, 정치과정의 개방이 적극 추진됐다. 굉장히 다양한 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시민단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협치 시스템들이 훼손·단절되고 있다. 시민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봉쇄가 이뤄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권력운영 방식이, 아래로부터의 거대 전환의 변동에 훨씬 둔감하다. 광우병 파동과 세종시, 4대강 추진과정에서 마찰을 빚는 게 단적인 예이다. 시민사회의 욕구를 무시하고 권력운영의 일방성과 독단성이 나타나고 있다.

집권정부와 대안세력간 힘의 균형이 민주주의의 핵심요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들어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 힘의 균형 회복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가운데 국정원, 검찰, 헌법재판소 등 비선출직이 법치의 이름으로 선출직인 의회를 압도하고 의회의 결정을 단속하며 시민사회 위에 군림하고 있다. 현 정부 관료들한테는 법치를 적용하지 않으면서 노동자, 농민, 반대세력에만 법치를 적용함으로써 법치의 이중 기준, 형평성 문제를 낳고 법치독재가 되고 있다.

지배계급은 소통을, 대안세력은 힘의 결집을


지배계급은 소통을, 대안세력은 힘의 결집을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회 ‘민주주의 미래’를 향한 과제로 옮겨보자.

정치연합이 역시 중요하다. 외국에서 정치적 민주화연합이 대부분 사회경제적 개혁연합으로 전이한 반면에, 우리나라의 그것은 사회경제적 연합을 형성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김대중 정부가 독자적 사회경제 연합을 거론한 적은 있으나 노동이나 진보정당과 정책연합을 시도한 것은 없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노사정위원회 실험도 노동자 요구를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연합은 우선 1단계로 진보연합이 이뤄지면 좋겠다. 그 다음으로 진보정당들이 가급적 집권연합을 형성하는 게 좋겠다. 독자 집권이 어려울 때는, 연합에 참여해 여성, 노동, 환경, 민족문제 등을 부분적으로라도 정책에 반영하려는 참여주의가 필요하다.

과거 한국의 민주화연합은 정당연합과 재야연합이 있었다. 여기에 학생, 노동, 민중, 지식인, 직업적 운동가들이 다 참여했다. 현재 민주연합 논의는 정당연합에 그치고 있는데, 정당연합과 시민연합이 합쳐져야 한다. 정당들에다가 방대한 시민사회단체들, 지역단체들, 노동단체들이 결합해 광범위한 사회경제 개혁연합을 형성하지 않으면, 과두제 지배세력에 맞서는 대안세력의 힘의 균형 회복은 불가능하다.

세력연합 필요성 자체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를 악마로 만들어버리는 식의 단기적 이익을 기준으로 서둘러선 안된다. 민주파가 권력을 잡거나 의미있는 정치세력으로 다시 부상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인식을 먼저 가져야 한다. 단기적으로 패배할지라도 중장기적으로 민주파가 민주주의를 통해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4·19와 5월 광주의 메시지를 복원하는 게 중요하다. 장기적으로는 87년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 요구를 응집시킬 수 있는 민주화 연합을, 새로운 정치세력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즉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을 단순히 결합시키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광범위한 연대를 통해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정치세력간 연합이나 결합은 새로운 사회변동을 수용하지 않고 기존 방식을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보다는 시민사회 내부의 팽창하는 욕구를 정치적으로 수렴하고 소화해내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잘 드러났듯이, 온라인을 매개로 다양한 회원집단들이 등장해 공론장의 민주화를 가속화시키는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들을 ‘유연자발 집단’ 또는 ‘제4의 결사체’라고 나는 부른다. 거시적 제도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이런 사회변동을 반영하는 민주주의 철학과 문화를 이해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사회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담론을 어떻게 개발하느냐도 중요하다.

사회적 공공성과 개인 삶의 안정성이 직결되어 있음을 담론화하는 게 필요하다. 거대 토목 프로젝트에 예산을 편중적으로 배분하고 성장 제일주의를 반복하는 이명박 정부 방식은 우리 삶의 안정성을 떨어뜨린다. 사회경제적 과두화의 반대편은 자영화이다. 자영화는 시민들이 자영업자가 되어 시장과 일 대 일로 대면하라는 것이다. 그때 삶의 불안함과 핍진성은 상상하기 어렵다. 담론의 공공성 회복이 개인적 차원에선 안정성 회복이고 사회적 차원에선 인간성, 인문성 회복이다. 올해는 이게 집중적 담론이 돼야 한다.

정치적 경쟁에서 승리하는 요건은 정치적 리더십, 정치적 담론, 정책 3가지 정도인데 그중 리더십이 제일 중요하다. 미국 민주당은 루즈벨트가 나서서 뉴딜 정책을 개발함으로써, 공화당이 30여년간 거의 정치를 포기할 정도의 효과를 발휘했다. 그런 수준의 정책과 담론을 개발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쪽의 성취는 그것대로 평가해줘야 한다. 이를테면 녹색성장 담론은 굉장한 흡인력이 있다. 지금 민주화세력이나 야권에서 강한 리더들이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이명박 정부에선, 박근혜 전 대표는 그렇다 치더라도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 같은 유능한 사람이 나타나고 있다. 신종플루 대처방식은 과거와 달랐다. 재야 성향 보건 전문가들과 많이 대화했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사회변동에 대한 정치권의 감수성이 늦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한 정치인이 촛불집회 관련 토론회에 와서 “촛불시민을 어떻게 새로운 정당으로 끌어들일까”라고 말했는데,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정치단체나 노조가 자기 힘으로 시민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류다. 정당, 시민사회단체, 노조가 바뀌어야 한다. 정치 엘리트들이 관용과 합의, 설득과 소통의 리더십을 익혀야 한다.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는 민주주의의 문화적 요소를 갖추는 게, 정치엘리트의 새로운 덕목이다. 소프트파워에 기초한 설득적 권력운영이 중요해지고 있다.


왼쪽부터 박명림 연세대 교수, 조대엽 고려대 교수, 최형익 한신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정당연합만으론 한계 시민사회·노동단체와광범위한 민주연합해야”

조대엽 고려대 교수

“사회변동에 대처하는 정치권의 감수성 늦어설득적 권력운영 중요”

최형익 한신대 교수

“반MB만 열심히 한다고 떠나간 표 돌아오지 않아4·19 5·18 메시지 복원을”

사회 정치권과 시민사회운동, 지식인 집단 등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현 민주당의 대안성이 냉정하게 평가받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한명숙·유시민, 손학규, 정동영 등 민주당의 현 지도부에서 거리가 멀수록 인기가 좋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극복을 위해 첫째로, 정당 출신이 아니면서 정당 외곽에서 시작해 정당을 장악하고 집권까지 성공한 사례가 노무현, 이명박으로 거듭 나온 점을 생각해야 한다. 정당과 정당 외곽,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리더십 건설을 생각해야 한다. 둘째, (보수세력의) 성장연합은 더욱 강고해졌는데 사회개혁 연합은 약화됐을 뿐 아니라 해체됐다. 정당정치만을 생각할 게 아니라, 시민사회의 참여열기를 어떻게 승화시킬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

민주당은 변화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것이다. 국민들이 보기에 민주화세력은 안보이슈나 국제정치 이슈에 무능하다. 개헌에 대한 입장도 없다. 민주화세력이 유능하지 않으면 지지받기 어렵다는 국민의 요구가 분명하다. 정치권 인물 순환은 좀더 빨랐으면 좋겠다. 시민단체는 조언은 하지만 정책을 입안해본 적은 없다. 실제로 뭘 담당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차이는 매우 크다. 시민단체는 ‘반이명박’ 같은 문제에 비분강개를 좀 덜하고, 국제정치와 동아시아 변화, 안보, 미래의 문제 등에 좀더 주력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박근혜 전 대표 눈치를 봤지, 민주당 반응은 무게있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더십과 정책, 대안이 없는 상태가 계속된다면 민주당은 5공 때 민한당처럼 되어 망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빼고 민주당 스스로 대안성을 갖고 지지도가 올라간 적이 있나? 민주당이 환골탈태해 대안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야권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정파적인 정당구조의 폐쇄성 때문이다. 정당운영 방식을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혁신해야 한다. 개방이라면 공직후보자 수혈만 이야기하는데 그런 게 아니고 일상적 정당운영에서 시민사회와의 소통 구조, 참여의 구조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기존 정당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헌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진보정당들도 별 차이가 없다. 범야권이 거대한 개방의 실험을 해야 할 때다.

민주노동당이 틀을 넘어서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정치적 진보성만 갖고 국민 정서에 호소해 성장할 수 있나? 그건 아니다. 리더십, 담론, 정책의 문제를 진보정당이나 시민단체도 똑같이 요구받고 있다.

지금의 진보정당들은 무책임하다. 정치에 참여하고 정당을 결성하는 순간, 옳은 것을 주장하는 것보다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과 방법을 개발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정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의 문제다. 옳은 것을 주장만 하고 실현 방법이나 지혜, 비전이 없는 것을 정치학에선 무책임성의 전형이라고 말한다. 노무현이나 김대중의 문제를 지적하기 이전에, 스스로 권력과 영향력을 갖고자 얼마나 노력했느냐를 성찰해야 한다. 지금의 진보정당들은 조봉암 수준의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조봉암은 대중성과 책임성의 결합을 중시했다. 시민단체들은 공공성과 공정성, 객관성을 고수해야 한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비판하던 것이 이명박 정부에서 나타나면 연속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지지했던 정책을 이명박 정부에서 하는 경우에 비판하면 안된다.

진보적 지식인 집단도 머리가 굳었다. 지식인이 여전히 어젠더에서 주도적 역할을 생각하는데 이제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과거 ‘운동 지식인’, 일종의 ‘혁명적 지식인’ 개념에서 이제는 참여적 지식인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참여적 지식인 패러다임은 훨씬 더 합리성을 갖추고 좀더 구체적인 정책적 과제를 고민해야 한다. 진보적 지식인 문화도 변화해야 한다.

정리/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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