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12.31 15:22 수정 : 2010.01.02 10:39

카페에서 민주주의를 마신다

[한겨레 2010 새해특집] 누리꾼 세상
멋 부리고 취미를 즐기는 데도 ‘개념’이 있어야죠





내가 뽑은 정치인이 잘못하면
콩나물·스타킹값이 뛴다
창한 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양한 의견에 귀기울이고 예의를 지킬 뿐이다

지난 12월11일 저녁 6시. 20대 여성 둘이 용산참사 현장을 찾았다. 인터넷 카페 ‘소울드레서’ 회원인 대학생 김보미(22)씨와 신아무개(26)씨다. 카페에서 진행한 아리솔화장품 협찬 판매 수익금 100여만원을 회원들을 대표해 용산참사 유가족들에게 전달하는 이들의 모습에선 비극의 현장을 찾은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김씨는 용산참사 직후부터 거의 매일 이곳을 찾았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이후 중요한 사회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관심을 나눈다. 그는 “예전엔 엄두도 못 냈을 일인데 카페 활동을 하면서 용기를 얻었다”며 “지금은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게 너무 좋다”고 말한다. 김씨는 <와이티엔>(YTN) 파업, 언론법 원천무효 집회 등에도 적극 참여했다.

2008년 촛불시위를 계기로 촉발된 인터넷 카페의 진화가 멈추지 않고 있다. 단순한 의사소통의 공간에 머물렀던 카페가 정치사회적 현안을 토론하고 행동을 이끌어내는 ‘광장’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른바 ‘여성 삼국연합’으로 일컬어지는 소울드레서·쌍코·화장발을 비롯해 엠엘비파크, 마이클럽, 82쿡닷컴, 고클래식, 뽐뿌 등 촛불 정국에서 맹활약했던 카페에는 세종시 이전, 4대강 사업, 언론법 통과 같은 우리 사회의 현안을 응시하는 글들이 속속 올라온다.

몇몇 카페는 아예 정치사회적 현안을 공유하는 별도의 게시판까지 운영한다. 일상의 관심사를 매개로 묶인 카페가 세상의 문제로까지 시야를 넓힌 것이다. 82쿡, 레몬테라스, 촛불나누기, 진실을 알리는 시민, 유모차부대 회원들은 지난해 언론법 반대 광고비 모금을 위한 ‘뻔뻔한 바자회’를 열고 ‘보수신문 광고주 불매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서도 소울드레서·쌍코·화장발의 참여의식은 유별나다. ‘언론악법 원천무효 맞불광고 모금을 위한 바자회’나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바보들, 사랑을 담그다’라는 김장 담그기 행사에는 회원 수십명이 참여해 힘을 보탰다. 지난해 3월 강원도 가뭄 때는 성금을 모아 한 트럭분의 생수를 전달하기도 했다. 강기갑·최문순·이정희 의원이나 김제동·손석희씨, 노종면 <와이티엔>(YTN) 노조위원장 등에게는 회원들의 격려와 지지 댓글을 모은 댓글북을 보내 응원한다.


이들에게 이런 행동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자신들을 새로운 사회적 현상으로 보는 시선도 낯설고 웃긴다고 코웃음친다. 신씨는 “20~30대 여성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도 언론을 통해 처음 들었다”며 “내가 뽑은 정치인 때문에 콩나물값과 스타킹값이 바뀌고, 동생의 급식비가 달라지는데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한 여성 카페의 회원은 “사회문제에 관심 없는 사람은 결코 내 애인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촛불의 세례를 받은 누리꾼들이 주축이 된 카페들도 꾸준히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언소주)과 815평화행동단(행동단) 등이 대표적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당시 보수신문의 논조에 항의하는 광고불매운동으로 시작한 언소주는 현재 8만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2008년 6월 ‘공영방송 사수’를 위해 모인 시민들이 결성한 행동단도 1200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카페로 발전했다.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인터넷 카페는 민주주의의 체험학습장이다. 그른 의견은 묻히고, 옳은 의견은 퍼진다. 베이스볼파크 회원 임현준(34)씨는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보는 것 자체가 개인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며 “카페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예절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운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 인터넷 주요 카페와 회원들에게 ‘2010년 새해 소망’과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물었다. 그들이 보내온 글과 일러스트, 만화, 포스터를 그대로 소개한다.

■ 우리카페 열혈 회원 토막 인터뷰

베이스볼파크 | 임현준씨
야구 얘기만 하며 살고 싶어요

2008년 10월 개설된 베이스볼파크는 촛불정국 당시 엠엘비파크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주축이 돼 만든 카페다. 7000여명의 회원들은 야구 얘기가 풍성한 사이트, 야구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세상을 꿈꾼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의 모임이지만 정치 얘기도 곧잘 나눈다. 사회인 야구단 ‘넷츠’(nets)에서 뛰는 임현준(34)씨는 “야구 사이트에서 정치나 사회 문제를 다루지 않을 때가 좋은 사회 아니겠느냐”며 웃는다. 요즘 그를 열받게 하는 건 1년 가까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용산참사와 학교급식비 예산 삭감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가 꼭 야구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청춘남녀들이 ‘영혼의 반쪽’을 찾기 위해 이 사이트를 찾는다. 임씨는 아직 짝을 찾지 못했지만 “민주주의의 반대 개념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 알고 있는 분들은 죄송하지만 사절”한단다.

소울드레서 | 김보미·신아무개씨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많아요

소울드레서 회원인 김보미(22)씨와 신아무개(26)씨는 다른 회원들이 그렇듯, 멋내기에 관심이 많다. “예쁘고 세련되게 옷을 입고 싶어서” 소울드레서에 가입했다. 패션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남친 뒷담화, 학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주고받으며 카페를 쏘다닌다.

“소울드레서에는 누군가를 위해 수고하시는 분들,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신씨), “저희보고 ‘정치카페’라고 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그냥 미용에 관심 있는 평범한 젊은 여성들의 모임인데 말이에요.”(김씨)

소울드레서엔 예쁜 여성들이 많단다. 회원들의 셀카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부러운 마음이 든다고 한다. 이들의 바람은 “지금보다 더 옷 잘 입고, 세련스럽게 되는 것”이다.

8·15평화행동단 | 정연길·박민영·정백영 씨
열심히 활동하면 복받아요

8·15평화행동단은 독특하게 살림을 꾸린다. 운영자도, 집행일꾼도 없다. 회원들은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활동한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도 다수결 대신 토론을 통한 전원합의를 원칙으로 한다.

목사인 정연길(44)씨는 2008년 촛불정국 때도 들지 않았던 촛불을 지난해부터 들기 시작했다. “독선적이고 독단적인 정책을 펴는 이명박 정부에 실망”했기 때문이란다. 회사원 박민영(28)씨와 정백영(39)씨는 광우병 쇠고기 파동 때 촛불을 든 것을 계기로 자연스레 회원이 됐다.

카페에선 이따금 경사가 생긴다. 정백영씨는 “이곳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두 쌍이 얼마 전 결혼에 골인했다”며 “열심히 활동하면 복을 받는다”고 말했다. 박씨는 “20살부터 60대 초반까지 회원들의 연령대가 고른 편인데, 20~30대 초반 남자들이 거의 없어 눈물이 날 지경”이라며 웃었다.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 조성애씨
빨간옷을 입고 활보하고 싶어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카페에 가입했어요. 촛불이 한창 타오르던 2008년엔 출산 직후라 마음만 보탰고요.” 세살배기 아들을 둔 조성애(39)씨는 지난해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에 가입했다. 기업에 대한 소비자의 불매운동은 당연한 권리임에도, 이를 옭아매려는 정부의 태도를 납득하기 힘들었다.

“잘못된 기사를 쓰는 언론에 광고하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왜 소비자 운동이 아닙니까? 심지어는 저더러 빨갱이라고 하더군요. 그럴 땐 정말 빨간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싶어집니다.”

애초 그는 후원회원으로 만족할 생각이었지만, ‘희망씨앗’이라는 닉네임이 발목을 잡았다. “정론지 후원 캠페인 이름으로 제 닉네임을 쓰겠다는 제안을 받았어요. 덕분에 오프라인 모임도 나가고, 1인시위에도 동참하게 됐죠. 언론악법이 무효화될 때까지 희망의 씨앗을 뿌릴 겁니다.”


듀나의 영화낙서판 (djuna.cine21.com) 얼굴 없는 영화평론가 듀나의 개인 게시판으로 출발해, 이제는 하나의 자율적인 커뮤니티를 이룬 게시판. 아이돌 찬양부터 정치 토론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매력적인 불협화음을 만드는 곳이다.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울드레서 (cafe.daum.net/souldresser) 패션과 헤어스타일에 관심 있는 1만4000여명의 젊은 여성들이 모였다. 국내외 모델, 유명 연예인 외에 소외받는 동물과 이웃에 대한 이야기도 수시로 나누는 따뜻한 카페.

2AM+2PM 팬클럽 ‘원데이룸’ (www.oneday-room.com)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cafe.daum.net/stopcjd)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당시 보수신문의 논조에 항의하는 광고불매운동으로 시작했다. 8만여 회원들이 보수신문 광고주 및 삼성 불매, 언론법 반대 등 다양한 언론소비자 운동을 펴고 있다.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노사모 (cafe.daum.net/nosamoim)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ing) 사람들의 모임. 매월 12일 노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에 가는 버스를 운행한다.

베이스볼파크 (www.baseballpark.co.kr) 야구를 좋아하는 7000여명이 모였다. 야구뿐 아니라 연애, 연예인, 정치, 사회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자유롭게 오가는 곳이다. 수시로 야구 경기 단체관람도 한다.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동방신기 팬클럽 ‘카시오페아’ (cafe.daum.net/sinki1004)

다음 텔레비존 베토벤바이러스 게시판 (tv.media.daum.net/program/thoven) 드라마 <베토벤바이러스>를 감명깊게 본 누리꾼들 200여명이 활동하는 곳. 김명민, 장근석, 이지아 등 출연 배우들의 근황과 회원들의 사는 이야기 등을 나누고 있다. <베바> 시즌2 방영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815평화행동단 (cafe.daum.net/815peaceact) 광우병 쇠고기 저지 및 공영방송 사수 촛불집회 때 맨몸으로 공권력을 막겠다고 나선 시민 1200여명이 만들었다. 촛불정신 계승을 목표로 투표참여 독려, 언론법 저지 선전전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한겨레 2010 새해 특집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