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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5 18:19 수정 : 2019.12.06 12:50

조기원 ㅣ 도쿄 특파원

2년 전 여름,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취재를 위해 일본 홋카이도 아시베쓰 지역에 갔을 때 일이다. 아시베쓰 지역에는 과거 미쓰이 재벌이 운영했던 탄광이 있었다.

안내를 해줬던 아시베쓰 지역의 일본인이 기차가 지나는 다리 건너 하천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하천 주변에 쇠약해진 조선인 노동자를 매장한 일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다.” 이어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곧 죽을 듯 보이는 (일본인) 노동자를 매장해버리는 일은 메이지 시대(1868~1912년)부터 있었다.”

최근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에 제출한 세계유산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산업혁명 유산) 이행 경과보고서 성격의 ‘보전 상황 보고서’에 조선인 강제노동 인정이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처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이 2015년 유네스코에 등재한 ‘산업혁명 유산’은 조선인들에 대한 강제노동으로 악명 높은 나가사키현 하시마(일명 군함도)를 포함해 일본 내 23곳의 탄광·제철소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메이지 유신 때 시작한 산업혁명을 통해 열강으로 거듭났던 일본 역사의 빛나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일본 문화청은 누리집을 통해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에 대해 “서양에서 비서양으로의 산업화 이전이 성공했음을 증언하는 산업 유산들로 구성돼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일본은 공업 입국의 토대를 구축하고 후에 일본의 기간산업이 된 조선, 제철·제강, 석탄과 중공업에서 급속한 산업화를 이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강조하는 산업혁명 성공의 역사 뒤에는 조선인과 일본인 노동자들이 참혹한 환경에서 노동해야 했던 어두운 역사가 있다.

강제동원 분야 전문가들은 조선인들이 가장 많이 동원된 장소로 탄광을 꼽는다. 탄광은 폭력과 학대가 횡행하는 장소로 일본 안에서도 악명이 높았고, 일본인들에게도 기피 대상이어서 인력이 부족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탄광에 가는 것보다는 군대에 가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들을 ‘국민징용령’이라는 법적인 틀을 적용한 ‘징용’으로 동원하기도 했지만, ‘모집’이나 ‘관 알선’이라는 명목을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실질적으로 강제동원한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탄광으로 동원한 경우에는 형식적으로는 ‘모집’이나 ‘관 알선’ 형태로 행해진 적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 초엔 일본 정부가 탄광 종업원 ‘현원 징용’을 논의한 적이 있다. 현원 징용이란 해당 직장에 근무 중인 종업원을 징용하는 방식으로, 현원 징용이 적용되면 법적으로도 대상자는 직장에서 퇴직하거나 전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해 1월18일 현원 징용이 적용되는 군수회사로 일본 내 주요 중화학공업 회사가 지정됐지만 탄광은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일본 정부조차도 법적인 징용을 적용하기에는 당시 탄광의 노동환경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기시 노부스케 당시 국무대신도 탄광 배제 이유에 대해 탄광 노무관리가 개선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보전 상황 보고서에서 관련 역사를 설명할 정보센터를 도쿄 신주쿠 와카마쓰에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공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로 들어간 것으로 보이나 어떤 전시물을 전시하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정보센터에서 조선인 강제노동, 그리고 당시 일본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서도 충분히 전시하기를 바란다. 메이지 시대 일본의 빛과 함께 어둠도 볼 수 있게 말이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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