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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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FTA에 무더기반대표를 던졌나 3주마다 돌아오는 칼럼이 회전칼날 같을 때가 많다. 주제 찾기가 가장 힘들지만, 가급적 ‘에프티에이’(FTA)는 애써 피하려 했다. 복잡한 에프티에이 조항을 시시콜콜하게 꿰지 못하며, 또 ‘에프티에이 세상’이 어떻게 펼쳐질지, 미래의 일을 지금 알지 못하기에 자신이 없어서다. 그러나 최소한 이것만은 알 것 같다. 우리 경제가 더 발전할진 모르겠으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며, 강한 자는 더 강하게, 약한 자는 더 약하게 될 것이며, 강한 자에게도 세상은 점점 더 팍팍해질 것이라는 것을. 올해 미국 추수감사절 쇼핑시즌에 한국에서의 인터넷 직접주문이 급증했다. 공산품 가격은 미국이 훨씬 싼데다, 추수감사절 세일로 배송료를 포함해도 30~50% 싸기 때문이다. 한 국내신문의 가격비교를 보니, 한국에서 23만원 하는 폴로 패딩점퍼의 미 추수감사절 세일가격은 9만5000원이다. 나도 추수감사절 다음날 바지와 오리털점퍼를 샀다. 바지는 25달러, 점퍼는 100달러, 메이커 제품이었다. 한국 할인점에서 3만원 하던 와인이 미국 슈퍼에서 7~8달러에 팔리는 걸 보면서 배신감(?)을 느낀 적도 많다. 에프티에이가 이행되면 우편서비스가 민간에 개방된다. 배송료가 낮아지면, 미국 업체와의 가격경쟁을 이겨낼 국내 유통업체가 얼마나 있을까? 이기려면 미국처럼 해야 한다. 미국 판매 의류 중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는 거의 없다. 인건비를 줄이려 계산대 외에는 매장 판매원을 거의 두지 않는다. 농축산업? 워싱턴과 맞붙은 버지니아주는 남한보다 더 넓다. 버지니아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리뻗는 81번 고속도로를 타면 7시간 내내 도로 양옆으로 넓은 목장이 끝없이 펼쳐진다. 점점이 박힌 소떼들이 염소 새끼 같다. 버지니아는 목축업이 특화된 곳도 아니다. 남한 면적의 4배가 넘는 캘리포니아주를 종단하면 오렌지 농장 지평선이 계속 이어진다. 한국과 미국이 농업으로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값싸고 질 좋은 소고기’ 싸게 먹으니 멋진 신세계인가? 한-미 에프티에이가 한국이 100% 손해 보는 장사는 분명 아니다. 미국보다 경쟁력 있는 자동차는 더 많이 팔릴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지금도 잘나가고 있고, 한국의 농축산업은 지금도 어렵다. 미국도 ‘무역’에 대해선 안 좋은 기억이 많다. 미국에서 무역이란 덜 교육받은 노동력을 희생해, 최고의 교육을 받은 노동력에 소득을 더 몰아주는 것으로 인식된다. 에프티에이 미 의회 비준 의결에서 서민을 대변하는 민주당이 여당임에도 무더기 반대표를, 부유층을 대변하는 공화당이 야당임에도 무더기 찬성표를 던진 이유다. 에프티에이가 이행되면, 뉴욕 법률회사 변호사의 휴일근로수당은 늘어나고, 디트로이트 자동차공장 노동자의 의료보험 지원수당은 더 줄어들지 모른다. 그리고 또다시 ‘새벽종이 울렸네’를 합창해야 하는 시대가 재현될지 모르겠다. 추수감사절 다음날 폭탄세일을 하는 ‘블랙 프라이데이’의 올해 풍경은 조금 달랐다.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시간을 앞당겨 월마트는 추수감사절 당일인 밤 10시, 베스트바이는 밤 12시에 문을 열었다. 미 언론들은 “1년에 한 번 온 가족이 모이는 저녁식사를 망쳤다”, “칠면조가 식기도 전에 매장 앞에 줄서야 한다”며 비판했다. 그러나 월마트는 추수감사절 매출에서 아마존, 애플에 이은 3위를 기록했고, 베스트바이는 주가도 3.4% 올랐다. ‘남과 같아선 이길 수 없는’ 세상이 1980년대에 시작됐는데, 이젠 그 무한경쟁이 미국까지 확대됐다. 미국은 한국보다 인구는 6배, 국내총생산(GDP)은 15배, 면적은 100배다. 그래서 우리 모두 ‘장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올 것 같다. ‘설렁설렁 살아도’ 되는 봄날은 갔다.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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