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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22 19:25 수정 : 2011.09.22 19:25

정남구 도쿄 특파원

일본 국민들과 달리
정치인·관료·재계는
원전산업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 왜?

1967년 12월11일 사토 에이사쿠 일본 총리(1964년 11월~1972년 7월 재임)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역사에 남을 발언을 했다. “핵무기는 보유하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 이른바 ‘비핵 3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세계 각국이 핵무기 개발 경쟁에 열을 올리던 무렵, 비핵을 실행에 옮긴 공로로 그는 나중에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그런데 지난해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발굴한 외교비사를 보면, 일본 외무성 관리들은 1969년 2월 독일(당시 서독) 외교관들을 하코네에서 극비리에 만나 “함께 핵무기를 개발하자”고 타진했다. 겉으로는 비핵·평화를 내세웠지만, 속마음은 달랐던 것이다.

지진대국 일본이 오늘날 세계 3위의 원전대국이 된 데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1982년 11월~1987년 11월 재임)의 노력이 많이 작용했다. 그는 연립여당에 참여한 소수야당(개진당)의 힘을 교묘히 이용해, 1954년 원자력 연구 예산을 처음으로 따냈다. 그는 일본을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핵 재처리’를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도 했다. 1987년 11월4일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일본은 그 뒤 30년간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할 때 일일이 미국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로써 소명을 다했다고 판단했는지, 나카소네는 그 이틀 뒤 총리직을 사임했다.

일본은 핵 재처리 시설을 지으면서 고속증식로(몬주)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 고속증식로는 핵분열 때 나오는 중성자를 우라늄 238이 흡수해 플루토늄 239가 만들어지는 원자로다. 한때는 핵연료를 무한증식하게 해주는 ‘꿈의 원자로’로 기대됐으나, 너무 위험해서 일본 외의 원전 선진국은 모두 포기한 것이다. 일본은 우라늄을 쓰도록 만든 원자로에 억지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섞은 혼합연료를 쓰면서까지, 플루토늄의 안정적 보유에 집착하고 있다. 지난 20일 내각부 보고를 보면, 현재 일본은 국내에 6.7t, 영국·프랑스의 재처리공장에 맡긴 23.3t 등 모두 30t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 나가사키 원폭 5000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에선 ‘원자력발전 의존으로부터 벗어나자’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정치지도자 가운데 ‘탈원전’에 가장 적극적인 간 나오토 전 총리는 “후쿠시마 사고로 일본 열도의 절반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고 최근 고백했다. 1000년, 아니 10만년에 한번 일어나는 사고라 해도, 그런 위험을 감수해선 안 된다. 일본 국민들은 돈이 좀더 들더라도 이제 원전 없이 안전하게 살자고 한다. 그러나 상당수 정치인과 관료, 재계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그들은 어떻게든 기존 원전산업 체제를 유지하자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왜? 일본 전문가들의 설명은 이렇다. “일본의 원전산업은 핵무기에 대한 욕망 위에 서 있다. 그들은 일본의 핵 보유 잠재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한다.”

남의 일 같지 않다. 내부고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지난 8월30일 공개한 주한 미국대사관발 외교전문에 이런 게 있었다. 지난해 2월17일 당시 외교통상부 2차관이던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이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와 만나, “2014년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이 시급하다”며 “우리나라에도 핵 처리 권한을 줘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다는 것이다. 천 수석은 이 문제를 “기술적으로 제대로, 또 조용히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를 보면 나카소네 전 총리가 30여년 전 일본을 이끌어간 그 길로 우리 정부도 막 걸음을 내디디려 하고 있다. 그게 무얼 뜻하는지, 우리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아니,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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