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9.08 19:29 수정 : 2011.09.08 19:29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무상급식 원한다’ 체크만 하면 그뿐,
소득원 증명 등의 다른 요구는 없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학교에서 급식 관련 편지가 왔다. 무상급식을 받을 것인지, 할인급식을 받을 것인지, 제값 다 내고 급식을 받을 것인지 정하라는 것이다. 1~8인 가족 기준별로 무상급식을 받을 자격이 있는 연소득을 안내했다. 4인 가족 기준 연소득 4만1348달러(약 4440만원) 미만이면 무상급식을 신청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워싱턴 디시(DC) 바로 옆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가구당 평균 연소득은 10만6785달러로, 미국에서도 소득이 매우 높은 곳이어서 무상급식 신청 학생이 그리 많진 않다.

무상급식을 원하면, 그냥 ‘무상급식을 원한다’고 체크만 하면 그뿐이다. 소득원 증명 등의 요구는 없다. 미국이 행정에서 어떨 때는 매우 깐깐하게 굴지만, 이럴 때는 또 그냥 믿어준다. 기록은 카운티 교육청 급식 담당국으로 가고, 그곳을 통해 행정이 집행돼 학교에선 누가 무상급식을 받는지 잘 모른다. 또 무상급식 여부에 학생들이 별반 관심이 없다. 아이들은 누가 무상급식을 받는 학생인지 궁금해하지도 않고, 무상급식 받는 학생들도 이게 알려질까 가슴 졸이고 스스로 그늘지는 그런 문화는 없다. 학부모 모임에서 한 학부모가 대화 도중 “불경기로 남편 소득이 줄어 무상급식을 신청했다”고 스스럼없이 얘기했고, 듣는 학부모들도 ‘그런가 보다’ 하는 식이었다.

한국에서 일이 터질 때마다 미국 예를 찾아 비교해 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여건과 생각이 너무 달라 비교 자체가 무의미함을 느낄 때가 많다. 이젠 이슈가 멀리 가버렸지만, 한국에서 무상급식이 온 나라를 둘로 쪼갠 걸 미국인들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미국에서도 주민투표를 한다. 큰 선거에 끼워 넣는다. 대통령, 주지사, 시장, 상·하원 의원, 주 검찰총장 등 기다란 후보 용지 밑에 ‘마리화나 합법화’ 찬반을 묻는 용지가 들어 있는 식이다. 그래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처럼 182억원의 비용이 들진 않는다. 공화당 주장이 이겼다고 민주당 시장이 사퇴하지도, 투표 전에 “대선 출마 않겠다”, “내 주장에 안 따르면 사퇴” 식의 생떼를 쓰는 건 미국인들은 더더욱 이해 못할 것이다.

미국에서도 시급한 사안에 비용을 들여 주민투표를 하기도 한다. 극히 예외적이다. 주민투표 실시 자체가 유권자들이 택한 의회를 통해 행정책임자가 해결하지 못해 “나, 리더십 없소”라고 선전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국가부채 상한 증액 문제로 공화당 반대가 아무리 심해도 “오냐, 의회는 비켜라. 국민들에게 직접 물어보자”고 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하더라도 사전에 여론조사, 공청회 등을 통해 압도적 민의를 확인하기 전엔 하지 않는다. 이미 서울시교육감 선거, 시의회 조례 등을 통해 민의를 확인하고도 이를 거부하고, 33% 정도 투표율을 얻을지 말지도 확신하지 못한 채 요행수에 모험을 거는 것, 역시 미국인들은 도무지 이해 못할 것이다.

주민투표에 내 돈 들여야 한다면 자식 둘 대학 보내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는 오세훈 시장은 했을까? 서울시장 보궐선거엔 또 얼마만큼의 시 재정이 더 들까? 무상급식이 크게 잘못된 것이고, 자신이 주장하는 ‘단계적 무상급식’이 옳다는 확신에 차 있더라도, 밀어붙이는 게 행정지도자가 할 일일까?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 판단을 따르면 될 터인데, ‘내 임기 안에’ 모든 걸 해치우려는 사람이 자꾸 늘어날까?

큰 상처 입은 사람을, 또 한번 몰아치는 건 잔인하다. 그러나 ‘제2의 오 시장’은 미국 아닌 한국에서도 더 이상 이해받지 말아야 할 것 같기에 ‘때린 데 또 때린다.’ ho@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특파원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