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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8.18 19:13 수정 : 2011.08.18 19:13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감세정책의 두 거두인 레이건·부시가 주창한
‘따뜻한 보수’에 여태껏 혹하는 미국인은 없다

기독교인들에게 십일조라는 게 있다. 소득의 10분의 1을 헌금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선 ‘교회가 아닌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이라며 십일조를 다니는 교회가 아닌, 농어촌 교회, 아프리카 선교단체, 불우한 이웃 등에게 (내 맘대로) 하는 것도 괜찮지 않으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교회의 답변은 “십일조를 다니는 교회에 한 뒤, 추가로 더 남을 돕고 싶다면 별도로 하라”는 것이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나 같은 부자들의 세금을 올려라”고 주장했다. 버핏 회장의 주장은 조지 부시 행정부 이래 미국 감세정책이 몰고온 파탄을 보여준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0년 대선 당시 ‘따뜻한 보수’(Compassionate Conservatives)를 기치로 내걸었다. 조세감면, 규제완화 등으로 기업가들의 투자의욕을 북돋워주는 대신, 기업들도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자는 것이다. 그는 연간 25만달러 이상 고소득자에게 감세 혜택을 줬다.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주면, 부자들이 돈을 쓰고,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도 부스러기를 먹고 윤택하게 된다는 논리(트리클다운 효과)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감세액을 종합하면, 하위 80% 가구는 총 감세액의 28% 혜택을 봤고, 상위 20% 가구가 감세 혜택의 72%를 독차지했다. 일자리는 안 늘고, 2010년 현재 미국의 누적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58.9%인 8조6700억달러에 이르렀다.

세금을 감면받은 미국 부자들이 ‘따뜻함’을 얼마나 발휘했는지 알 수 없지만, 감면받은 액수보단 훨씬 적을 것이다. 세금은 감면받고, 기부는 칭찬받고, 나 스스로 뿌듯하고, 이 얼마나 (부자들에) 좋은 세상인가?

감세를 통해 경기촉진 효과를 거두려면 이론적으론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쪽 세금을 줄여야 한다. 법인세가 아닌 부가가치세를, 소득세가 아닌 소비세를 줄여야 한다. 경제관료들은 이런 주장에 “수혜층이 너무 넓어 감세 폭을 미미한 수준으로 낮출 수밖에 없어 체감효과 없이 세수감소만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맞다. 그러나 그토록 세수감소를 걱정하는 소심한 정부가 ‘수혜층이 너무 좁아 감세 폭을 크게 할 수 있어 감세 체감효과를 듬뿍 누릴 수 있는’ 부자감세에는 어찌 그토록 강심장이 되는지 궁금하다.

감세정책의 두 거두인 로널드 레이건과 부시 전 대통령이 주창한 ‘따뜻한 보수’에 여태껏 혹하는 미국인은 거의 없다. 교육예산을 삭감해 대학들이 등록금을 올려 중산층을 허덕이게 만들고 학생들은 졸업하자마자 빚더미에 올라앉게 하고선, 공립학교 다니는 서민 자녀가 사립학교 전학을 희망하면 국가가 이를 보조해주는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고, 대통령이 초등학교 가서 아이들에게 친히 책을 읽어주는 게 부시의 ‘따뜻한 보수’다. 규제완화로 기업이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해고하거나 공장폐쇄를 할 수 있도록 하고선, 실직 노동자들에게 무료로 취업교육 시켜주고, 예의 그 환한 미소와 함께 실업자들에게 피자 사주며 ‘용기 내라’고 등 두드려주고 에어포스원으로 돌아가는 게 레이건의 ‘따뜻한 보수’다. 미국에선 구닥다리가 된, 낯간지러운 ‘따뜻한’을 갖다붙인 캠페인 어구가 대한민국에선 아직도 목소리가 높은 듯하다.

결론을 말하자면 ‘따뜻한 기부’보다 ‘차가운 세금’이 먼저다. 말고 싶으면 말고, 내면 박수 받는 ‘기부’가 아닌, 내기 싫어도 억지로 내야 하는 ‘세금’이 사회를 지탱한다. 재단 만들고, 자기 아들·손자 대대손손 이사장 시키는 사회환원 대신, ‘세금 더 내겠다’고 주장하는 한국 부자들이 나와 이젠 국격을 좀 높여줬으면 한다. 자신의 세금을 올리라고 주장한 버핏은 자신의 재산 99%도 사회에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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