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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21 19:21 수정 : 2011.07.21 19:21

정남구 도쿄 특파원

일본은 취약한 복지로 경제가 악순환에 빠져
지금은 확충하려 해도 재정이 뒷받침 못해줘

선거가 좋은 것은 정치세력으로 하여금 민의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는 점이다. 1972년 12월 일본 중의원 선거도 일본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꿀 만한 결과를 내놓았다. 자민당의 득표율은 1955년 집권 뒤 처음으로 50%를 밑돌았다. 과반 의석은 확보했으나, 대도시에선 의석 비율이 33.9%로 추락했다.

복지를 전면에 내건 일본공산당의 약진이 눈부셨다. 공산당은 그 전 선거에서 6.8%이던 득표율이 10.49%로 오르면서, 의석을 14석에서 38석으로 늘렸다. 지방선거에서는 복지 추진 세력이 이전부터 대약진을 하고 있었다. 67년엔 도쿄에, 71년엔 오사카에서 진보세력이 연합해 낸 후보가 단체장이 됐다. 이른바 ‘혁신 지자체’들은 자민당 정부의 지시를 어기고 어린이수당 제도를 지역에 도입했으며, 노인 대상 무상의료를 시행했다.

74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위기의식을 느낀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는 ‘성장 우선’ 노선의 대전환을 시도했다. 다나카의 자민당은 73년을 ‘복지원년’으로 선언했다. 그해 1월부터 70살 이상 노인의 의료비를 무상화했다. 1만~2만엔이던 출산보조금은 6만엔으로, 장례보조금은 2000엔에서 3만엔으로 올렸다. 후생연금의 소득대체율이 크게 오르는 등 일본에 일찍이 없던 복지 확충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은 유럽 국가에 견주면 복지제도랄 게 별로 없는 나라였다. 70년 일본의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은 4.7%로 경제 규모가 비슷한 서독(12.2%)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복지원년 선언 이후 일본의 사회복지 예산은 크게 늘었다. 73년 정부 예산의 14.8%이던 복지 예산은 75년 18.5%로 늘었고,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도 7%대로 높아졌다.

그 뒤 일본은 ‘복지국가’가 되었던가? 물론, 아니다. 73년 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고, 이듬해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자 복지 확충은 흐지부지됐다. 복지비 지출 총액은 계속 늘었지만 이는 고령화에 따른 자연증가였고, 실질 복지수준은 80년대부터 뒷걸음질을 쳤다. 취약한 복지는 고성장 시대가 끝나면서 빈곤 확대, 자살률 급등으로 이어졌고, 경제는 악순환에 빠졌다. 지금은 복지를 확충하려고 해도 재정이 뒷받침을 못해줄 형편이다.

1인당 소득이 일본의 절반도 안 되고 복지제도도 취약한 한국은 빈곤율과 자살률에서 이미 일본을 능가했다. 일본과 다른 점은, 국민들 사이에 보편적 복지에 대한 요구가 아주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재정 여력도 있다.

73년 자민당만큼은 아니지만, 한나라당이 요즘 ‘서민’과 ‘복지’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 표를 얻기 위한 정치인·정치세력의 변신은 탓할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의 진정성과 지속성이다.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철저한 ‘반복지’의 길을 걸어왔다. 4대강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가난한 이들에게 주던 장학금을 대출금으로 바꿔줬다. 법인세와 소득세 세율을 대폭 인하해 연간 수십조원의 복지재원을 없애버린 일은 반복지의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일이다.

최근의 ‘친서민’ 행보도 복지와는 거리가 멀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20일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만나 “은행연합회도 서민금융을 위해 2000억원을 내놓는다는데, 전경련은 돈이 더 많잖으냐”며, 돈을 더 내라고 했다 한다. 이건 속된 말로 ‘삥’을 뜯어 국민에게 ‘개평’을 주자는 것이다. 복지는 제도로 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진짜 서민을 생각한다면, 재벌과 고소득자들의 잔치에 앞당겨 써버린 수백조원의 재원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투표일까지만이라도 좋으니, 진정 그 방향으로 한번 걸어보길 바란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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