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14 19:12
수정 : 2011.11.2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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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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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에게 북한은 무엇일까?
향수 혹은 환상? 아니면 거울일까?
“나는 중국을 사랑해, 나의 어머니 중국….”
중국 관객들 앞에서 북한 가수가 유창한 중국어로 부르는 중국 찬가를 듣고 있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북-중 우호협력원조조약 체결 50돌 기념일 전야인 지난 10일 밤, 베이징전람관에서 북한 평양예술단의 가무공연 <활짝 핀 진달래>가 펼쳐지는 내내 중국을 향한 북한의 ‘구애’가 느껴졌다.
무대 뒤편으론 천안문과 칭짱고원 등 중국을 대표하는 풍경이 비춰졌고, 그 앞에서 북한을 대표하는 가수들은 “오성홍기 우리의 긍지, 우리의 자랑, 나의 생명보다 귀중해” 등 중국의 홍색가요들을 불렀다. 북한 예술인들이 중국 옛 세대에게 익숙한 노래들을 부를 때마다 관중석에선 열렬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1970년대 중국에 북한 문화 열풍을 일으켰던 영화 <꽃 파는 처녀> 화면과 함께 주제곡이 불려지는 동안 객석의 집중이 느껴졌다. 하지만 <정일봉의 노래> 등 북한 체제 선전 노래들에 대한 객석의 호응은 없었다. 공연장 안팎 어디에도 북-중 우호협력원조조약 체결 50돌을 기념한다는 펼침막이나 북-중 우호를 상징하는 구호는 없었다.
공연이 막을 내리고 밖으로 나오니 공연장 앞 광장은 무더위를 피해 나온 베이징 시민들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롤러블레이드를 타며 신났고, 어른들은 운동과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다.
중국인들에게 북한은 무엇일까? 향수일까, 환상일까, 거울일까? 일부 중국 좌파들은 북한을 중국이 급격한 시장화로 잃어버린 평등과 순수를 간직한 이상향으로 미화한다. 나이 든 세대에게 북한은 가장 친숙한 이웃나라이자 향수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보통 중국인들에겐 북한은 가난하고 낙후되고 폐쇄된 국가이자, 잊고 싶은 옛 모습이며, 거기서 출발한 중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비춰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 대북한 정책을 논하고 결정하는 당국자·전문가들에게 북한은 중국의 국익에 따라 냉정하게 관리해야 하는 ‘전략적 카드’다.
1961년 7월11일 베이징에서 김일성 당시 북한 수상과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가 서명한 북-중 우호협력원조조약 2조에는 한쪽이 공격을 받아 전쟁 상태로 바뀌는 즉시 다른 한 국가가 상대방에게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담겨 있다. 조약 체결 50돌을 맞아 관영 <환구시보> 인터뷰에서 중국의 한반도 관련 전문가들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유지를 위해 이 조약을 유지해야 한다고 한결같이 강조했다. 왕이성 중국군사과학원 연구원은 “북-중 우호조약은 중국이 북한을 견제하면서 미국과 한국도 위협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전략적 가치가 있다”고 언급했다. 퍄오젠이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만약 이 조약을 폐지하면 한국이 한반도 통일을 주도할 수 있다고 오판할 수 있다”며 “한·미에 대한 일종의 경고 차원에서도 이 조약은 폐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는 냉전시대의 혈맹관계와는 이미 거리가 멀다.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수용하도록 유도하면서도, 북-중 경협은 중국에 큰 이익인 북한 지하자원 개발과 동해 출항권이 걸린 나선특구 개발에 집중한다. 북한의 3대 세습을 용인했지만, 북한이 원하는 수준의 떠들썩한 지지는 하지 않는다. 중국이 ‘북한카드’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동안, 한국의 남북관계 차단으로 퇴로를 잃은 북한은 중국의 자장권 속으로 빠르게 빨려들어가고 있다.
북한붕괴론과 ‘한-미 전략동맹’을 강조했으나 북한의 변화도, 한반도 상황에 대한 영향력도 잃어버린 한국의 대북정책에 비해 중국의 정책은 한없이 냉정하고 치밀하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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