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07 19:19
수정 : 2011.07.07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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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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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한 그들이 낯선 한국 농촌의
엄마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4월 출간 이후 <뉴욕 타임스>에 두 차례나 소개됐고, 아마존닷컴 상반기 ‘편집자가 뽑은 베스트 10’에 뽑혔고, 본격문학 판매순위 29위에 올랐다. 인터넷에는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밤새 울었다거나, 늦은 밤 고향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등의 감동 어린 독후감들도 올라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만난 신경숙씨는 한국 농촌사회의 전형적인 옛날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미국에서도 통하는 이유에 대해 “문명의 발달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이젠 다시 더듬어 보고픈 시간이 된 것 아닌가”라며 “동양에도 서양에도 ‘엄마’는 엄마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미국과 한국의 정서는 분명 상당한 차이가 있다. 미국인들에게서 맨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은 자신의 권리에 대해선 한 치의 양보도 없다는 점이다. ‘정’이나 ‘체면’, ‘눈치’ 때문에 내 것을 양보한다는 건 보통의 미국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쇼핑센터, 은행, 관공서 등 어디를 가도 줄서는 것에 익숙한 미국인들은 자신의 차례가 되면 뒤에 아무리 길게 줄이 늘어서 있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다. 상대하는 점원이나 공무원도 그 순간에는 그 고객, 그 민원인에게만 집중한다. 뒤에서 줄을 선 이들도 “빨리 좀 합시다” 등의 불평을 터뜨리는 사람이 없다. 어린아이들이 놀 때 가장 자주 쓰는 말이 ‘마이 턴’(내 차례)이듯 내 권리는 최대한 누린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큰아이의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카운슬러나 교과 교사에게 추천서를 부탁했으나 방학이 되자 “(4주) 휴가를 가야 한다. 갔다 온 뒤에 써주겠다”고 한다. 취재원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내가 아무리 급해도 상대방이 “업무시간이 끝났다”고 하면 더는 도리가 없다. 얼마 전 한 국내 언론에서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한 한국인 마이너리거들의 어려움을 소개한 기사를 봤다. 훈련은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고, 코치는 선수의 상태를 체크해 우수한 선수를 경기에 내보내는 게 주임무다. 퇴근시간에 뭘 도와달라고 하면 코치들은 “집에 가야 된다”고 한다. 우리처럼 연습하겠다면 기특해서 기꺼이 펑고(연습볼)를 날려주거나, 게으르면 붙잡아놓고 닦달하는 코치들을 미국에선 보기 힘들다. 또 미국에서도 학교폭력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지만, 해결 방식은 정해져 있다. 학교는 경찰의 순찰 코스다. 학교폭력이 일어나면 우리처럼 ‘쉬쉬’하지 않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해 폭력 학생은 체포되고, 전학조처된다. 한마디로 모든 관계가 참 ‘쿨’하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이런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사람들을 좀더 만나다 보니, 어느샌가 그 미국인들도 “사람은 다 똑같다”(Human being is human being)는 말을 자주 읊조리는 걸 많이 봤다. 아이들 성적에 울고 웃는 엄마, 이혼하고 혼자 사는 아들이 안쓰러워 노스캐롤라이나에서 6시간 차를 타고 워싱턴까지 와 빨래하고 음식을 장만해주는 어머니, 추수감사절날 ‘바빠서 올해는 집에 못 가겠다’고 하면 씁쓸하게 전화를 내려놓거나 아니면 구구절절 신세한탄하는 어머니, 나이 들면 젊은 사람 붙잡아놓고 옛날 얘기 하기 좋아하는 할머니 등 우리네 모습과 알고 보면 별반 차이가 없다.
미국인들이 낯선 한국 농촌 이야기인 <엄마를 부탁해>에 빠져드는 건 이민자의 나라답게 모든 걸 시스템으로 통제하는 합리성 아래에 그들도 모든 걸 다 용서하고 안아주는 푸근하고 따뜻한 잃어버린 ‘엄마’를 갈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인도 똑같은 사람이니까.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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