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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30 19:32 수정 : 2011.06.30 19:32

정남구 도쿄 특파원

일하는 사람들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줄 구체적인 그림을 내놓으라

일본 정부가 요즘 한창 논의중인 세제 및 사회보장 개혁안에서 현행 5%인 소비세율을 10%로 올리는 시기를 ‘2010년대 중반까지’로 하기로 했다. 애초 ‘2015년’이라고 하려던 것을 여당 의원들이 “그러면 다음 선거에서 불리해진다”며 반발해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모호한 표현을 써서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두는 일본 정치의 한 단면이다. 여야 할 것 없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기보단 다음 선거의 유불리만 앞세우는 걸 보면서, 일본의 앞날이 어둡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의 악순환에 빠져 있는 일본 경제의 핵심 문제는 가계의 소비능력이 부족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그나마의 소비조차 절제한다는 데 있다. 일본은 나라가 빚을 내서 그 부족한 소비를 보완해왔다. 그 결과는 국내총생산의 2배나 되는 세계 최악의 국가부채로 쌓였다. 요즘 세수는 정부 지출의 절반도 안 되니, 나랏빚은 계속 급증하게 돼 있다.

세계의 부러움을 사던 일본이 이렇게 된 데는 선순환을 낳던 기존의 분배시스템이 해체되고, 그것을 대체할 새 시스템은 제때 마련하지 못한 탓이 크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일본은 ‘기업복지’의 나라였다. 그러나 기업복지의 대상과 내용이 계속 축소됐고, 그것을 대체할 조세와 사회보험에 기반한 복지제도는 확충되지 못했다. 일본은 그나마 있는 복지제도라도 안정화시키려고, 지금 경제 악영향을 무릅쓰고 세금을 올려야 할 처지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재벌기업과 금융회사, 공기업 외에는 어설프던 기업복지가 이미 다 해체됐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뒤엔 국가복지의 싹마저 잘리고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감세를 통해 세수기반에 큰 구멍만 뚫어놓았다. 이명박 정부는 감세야말로 기업투자가 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길이라고 했다. 그것보다 좋은 복지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

결과가 어떤지는 다들 잘 안다. 수출대기업들은 고환율의 덕까지 봐,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이익을 누렸다. 종합주가지수만 보면 이런 태평성대가 없다. 하지만 오직 그들만의 잔치였다. 가계는 빚을 내 소비를 지탱하는 데 한계를 맞고 있으니, 앞날은 더 어둡다.

진지하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정말 대기업들이 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늘릴 것이라고 판단했는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천하의 멍청이요, 이런 결과를 알고도 밀어붙였다면 국민을 상대로 사기친 것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요즘 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벌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렇게 돈 벌게 해줬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가 재벌 편이 아니라 서민 편인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지,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이 바빠졌다. 재벌들은 볼멘소리를 하지만, 한두번 보는 드라마가 아니기에 결말은 잘 알고 있다. 곧 재벌들의 ‘성의 표시’가 줄줄이 나올 것이다. 이명박 정권 출범 초기 엄청난 감세조처에 대한 비판이 봇물을 이루자, 재벌들에 ‘미소금융’에 출자하도록 했던 것과 비슷한 구도다.

서민의 삶과 나라경제의 안정을 위해 정작 필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사기 아니면 거짓말’로 드러나 버린 경제운용전략부터 바꿔야 한다. 일하는 사람들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줄 구체적인 그림을 내놓아야 한다. 삼성이 전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상품권을 나눠주는 게 내수 활성화를 위한 노력으로 포장되는 것은 참으로 볼썽사납다. 방향이 불분명한 정부와 여당의 어설픈 재벌 때리기는 ‘짜고 치는 고스톱’ 판에서 재벌들에 돈을 다 몰아주고는 ‘개평 한푼 안 주냐’고 소리치는 것과 뭐가 다른가?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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