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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23 19:20 수정 : 2011.11.21 15:54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인플레이션과 권력·부 독점,
농민공 차별… 임계점이 왔다

“이 마을에는 높은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구도 벽의 뒤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어떤 이는 사흘간 걸었지만 끝을 알 수 없어 포기했고, 어떤 이는 일주일을 걷다가 굶어 죽었다. 이후 벽은 깰 수 없다고, 누구든 벽을 깨자는 말을 꺼내면 처벌받는다고 모두 믿게 됐다. 하지만, 나는 깰 수 없는 것은 벽 때문이 아니고, 누구도 벽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유명 작가이자 축구 전문 기자인 리청펑은 중국을 에워싸고 있는 공산당 일당 체제의 벽 너머에 있는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위해 선거에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5월 말 중국판 마이크로블로그인 웨이보에 ‘선거 출사표’를 발표하고, 쓰촨성 청두시 우허우구의 인민대표 선거에 나섰다.

공산당 일당 통치가 60년 넘게 계속되는 중국에서는 가장 말단 행정조직인 구와 현의 인민대표만 직접 선거로 뽑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공산당 조직이 추천한 후보만 나서는 것이 ‘불문율’이다. 법적으로 국민 누구나 출마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공산당 손바닥 안에서 이뤄진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후보’로 나선 리청펑의 도전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그가 당선된다 해도, 거대한 중국 정치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구 인민대표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선거 참여가 현재의 중국은 바꿀 수 없더라도, 미래 교과서 속 중국의 모습은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저명한 사회학자 위젠룽, 법학자 허웨이팡, 작가 한한, 영화감독 펑샤오강 등 중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가진 지식인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다.

리청펑을 비롯해 이미 중국 각지에서 100명이 넘는 독립후보가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1989년 천안문 민주화시위 유혈진압 이후 자취를 감췄던 정치 열기가 중국 사회 밑바닥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 당국은 ‘독립후보는 법에 근거가 없다’고 경고했지만, 대부분의 후보들은 ‘법에 피선거권이 보장돼 있는데 무슨 소리냐’며 출마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7월1일 중국 공산당 창당 90돌을 앞두고 온통 ‘공산당 만세’의 붉은 물결로 뒤덮인 듯 보이는 중국에서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리청펑 등 인민대표 독립후보들의 정치적 도전장과 함께, 네이멍구부터 광둥까지 곳곳에서 약자들의 분노가 아우성치며 깨어나고 있다. 5월 말부터 한달 새, 광산 개발에 항의하던 몽골 유목민이 한족이 몰던 트럭에 깔려 숨진 뒤 벌어진 몽골족의 시위, 강제철거에 항의하던 장시성의 농민이 지방 정부청사 건물에서 사제폭탄을 터뜨린 자폭사건, 광둥성에서 체불임금을 받으러 간 농민공이 사장의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은 데 항의하는 집단시위, 20살 임신부 노점상에 대한 거친 단속에 분노한 농민공들과 경찰의 충돌 등이 중국을 뒤흔들었다.

당국의 대응은 이번에도 공안과 무장경찰을 대규모로 파견해 해당 지역을 계엄령식으로 봉쇄해 억누르는 식이다. 하지만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특권층의 권력·부 독점에 대한 분노가 커지면서 농민공 차별, 강제철거, 무분별한 자원개발과 소수민족 차별 등 개혁개방 이후 30년 동안 쌓여온 문제들이 임계점을 향해 끓어오르고 있다.

당과 정부가 정치·사회를 통제하면서 고속성장을 이끌어가는 중국식 발전모델이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의 각광을 받았으나, 올해 들어선 국내외에서 계속 벽에 부닥치고 있다. 통제와 복종의 모델 대신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동의, 권리를 확장하는 ‘중국 모델 2.0’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신호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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