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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16 19:15 수정 : 2011.06.16 19:15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미국 정부·대학이
장학금을 얼마나
주느냐의 기준은
‘돈’이다

한국에서 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미국은 어떻게 하나?’ 하고 찾게 된다. 그때마다 배경과 시스템이 달라 동등비교가 힘들고, 그래서 ‘미국이 이렇게 잘하고 있으니 우리도 따라 하자’는 주장을 할 수 없음을 거의 매번 느끼곤 한다.

그럼에도 곪다 곪다 터져버린 한국의 대학 등록금 문제에 대해 ‘미국은 어떻게 하는지’ 수박 겉핥기일망정 알아봤다. 미국은 금액으로도, 소득기준으로도, 대학 등록금이 엄청나게 비싼 나라다. 그러나 숨쉴 공간은 얼마든지 있다. 대학 등록금을 온전히 다 내는 학생은 외국인이나 백만장자밖에 없다. 대략 연소득 10만달러 가정이라면 2만달러, 5만달러 가정이라면 5000달러 정도의 가정분담금(EFC)이 책정되고, 나머지는 연방정부, 주정부, 대학 등 3곳에서 재정지원을 한다. 명문대일수록 장학금이 많다. 가난한 학생들은 등록금 비싼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이 등록금 싼 주립대에 가는 것보다 돈을 더 적게 낼 수 있다.

연방정부, 주정부, 대학이 학생에게 장학금을 얼마나 주느냐의 기준은 ‘돈’이다. ‘이 학생에게 투자해 얼마나 더 얻어낼 것인가’이다. 학생이 졸업 뒤 돈을 많이 벌면 정부는 더 많은 소득세를 걷는다. 대학도 졸업 뒤 모교에 얼마나 기부금을 낼 수 있을 것인지에 주목한다. 따라서 성적 외에 장래성, 인성, 대학 충성도 등이 장학금 산정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명문대학에선 부모가 그 대학을 졸업한 자녀들을 선호해 ‘레거시’(legacy)라 부르는 이런 학생을 전체 정원의 10%까지 뽑기도 한다. 2대 이상의 동문이 기부금을 더 많이 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여서 미국에선 기부금 입학이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대학 그랜트(장학금)는 기금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몇년간 재정이 위축된다고 해서 들쭉날쭉하지 않는다. 또 각 대학은 졸업생들의 기부금보다 수많은 투자와 수익사업을 통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그런데 미국에서 이런 시스템이 정착하기까진 거의 1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고 봐야 한다. 오랫동안 다투면서 사회적 합의를 끌어냈고, 사회환경도 이에 맞춰졌다. 이런 관점에서, 등록금 문제에 대해 “서두르지 말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틀렸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학부모나 학생들이 이 대통령의 말에 발끈하는 이유는 3년 반 동안 쌓인 불신 탓에, 그 말은 곧 “이대로 두자”는 말로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등록금 논쟁 과정에서 ‘대학 진학률을 낮춰야’, ‘극빈층 지원에 먼저 힘써야’ 등의 파생 논쟁도 나온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아닌데, 대학 진학률만 낮추려 한다면 재수생만 늘어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대학이 취업준비기관으로만 기능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양식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장으로서 구실을 할 수 있다면, 대학 진학률이 높은 걸 문제라 할 수 있을까?

이와 함께 ‘반값 등록금보다 결식아동 등 극빈층 지원에 먼저 힘써야 한다’는 주장이 보수언론에서 강하게 나오는 건 아이러니다. 그걸 보면서 반값 등록금이 추진될 경우 늘어나는 세금 부담을 져야 하는 고소득층의 명분잡기인가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건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탓일까? 소득 대비 세계 2위의 비정상적인 가격을 그대로 두는 건 시장논리에도 맞지 않고, 복지정책에도 배치된다.

결론은 또 ‘돈’이 될 것이다. 4대강 사업에 들일 돈을 등록금에 썼더라면 이 대통령의 위상이 지금 같진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세금 더 내놓으라’, ‘기부 좀 하라’고 으름장을 놓기보다 반값 등록금이라는 선물이 혹시 우리 사회 복지정책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도 해본다.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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