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6.09 19:24
수정 : 2011.06.1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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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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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원전 사고로암환자가 50년간
40만명 늘것이라고ECRR가 예측했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석달이 돼 간다. 들려오는 얘기로는 이제 한국에선 후쿠시마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4월 초 방사능비가 내린다고 경기도의 일부 학교가 휴교까지 했던 것을 생각하면 놀랍다. 과잉반응과 빠른 망각이 교차하는 것은 역시 방사능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방사선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다. 대량피폭을 당해도 몸에 곧바로 통증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천천히 나타나는 그 피해는 아주 무섭다. 1999년 9월 일본 제이시오(JCO) 핵연료 가공공장에서 오우치 히사시 등 2명이 대량피폭을 당해 병원에 실려갔다. 당시 오우치는 오른손이 조금 부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혈액 속의 임파구가 파괴돼 온몸의 세포들이 점차 괴사하면서 83일 만에 사망했다. 저선량을 쬐었을 때는 그로 인한 영향이 길게는 10~30년 뒤에 암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번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유출사고로 누군가 대량피폭을 당해 죽거나 치명상을 입었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 하지만 방사능 물질은 대량 유출됐고, 지금도 계속 새나오고 있다.
도쿄도의회의 공산당 의원들이 전문가들과 함께 측정해 며칠 전 공개한 도쿄 방사선량은 내겐 꽤 충격이었다. 우리집 근처 공원의 방사선량은 시간당 0.134(모래밭 위 1m)~0.233(풀밭 표면)마이크로시버트였다. 문부과학성이 도쿄 신주쿠의 지상 18m에서 계측한 시간당 0.06마이크로시버트에 견줘 최고 4배였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성인의 피폭허용치 1밀리시버트(1000마이크로시버트)를 넘는 1.17~2.04밀리시버트였다. 가나마치 정수장이 있는 가쓰시카구에선 시간당 0.3마이크로시버트를 넘겨 계측돼, 원전 피난구역에 접해 있는 이와키시보다 높았다.
원전에서 300㎞ 떨어진 가나가와현의 생녹찻잎에서 채소 기준치(1㎏당 500베크렐)를 넘는 방사성 세슘이 검출돼, 일본 정부가 최근 출하정지 조처를 취했다. 오염은 이렇게 확산되고 있지만 음식물 섭취나 호흡으로 방사능 물질을 흡수해 입는 내부피폭량은 파악할 길이 없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위험이 현실로 닥치고 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유럽방사능리스크위원회(ECRR)는 지난 4월 후쿠시마 사고로 원전 반경 200㎞ 안에서 앞으로 10년간 20만명, 그 뒤 40년에 걸쳐 20만명 이상 암환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원자로 3기의 연료봉이 모두 녹아내린 이번 사고의 심각성에 견주면 이 정도 피해로 그쳐도 ‘천운’일 것이다.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천천히 나타날 것이다. 일본 암학회 보고서를 보면, 각국의 핵실험이 본격화한 1950년대 초반 10만명당 3명이던 일본의 소아암 환자가 1960년대 후반엔 6명까지 늘어났다. 대기중 방사능의 증가는 모르는 새 이렇게 생명을 갉아먹는다.
중국이나 한국의 원전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진 다발지역에 세워진 일본의 원전 54기에서는 이번보다 훨씬 심각한 사고가 언제 또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다. ‘원전 괴물’의 실상을 알아차린 일본인들은 후쿠시마 사고 석달을 맞는 11일, 전국 40개 이상의 도시에서 원전 반대 집회를 연다. 이들은 이날 세계 각국에서 100만명이 핵재앙의 재발을 막기 위한 행동에 함께 나서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군데에서 거리행진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직접 참석은 못해도, 이날 하루만은 모두가 원자력발전에 대해 알아보고 한번 더 깊이 생각해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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