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6.02 20:03 수정 : 2011.11.21 15:56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그는 3차례 방중에서 ‘중국을 믿을 수 있는지’ 점검 또 점검했을 것

오랜만에 기차여행을 했다.

중국 지린성 창춘역에서 야간열차를 탔다. 마음 편한 여행은 아니었다. 5월20일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쫓아 21일 창춘에 도착했다. 그가 머무른 호텔 앞에서 공안들에 쫓기며 2시간을 버텼지만, 김 위원장의 차량 행렬은 호텔을 빠져나오자마자 창춘역으로 직행했고, 특별열차는 남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창춘역에서 기차에 올라 돌아오는 내내 잠이 오지 않았다. 이 철길의 저쪽 끝에는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가 달리고 있겠지. 나는 뭘 알아내려고 그를 뒤쫓았을까. 도대체 그는 왜 1년 새 세 번이나 중국에 와서 이 먼길을 돌아다니고 있을까. 중국과 북한 사이에선 어떤 일들이 합의되고 있을까. 창밖의 어둠처럼 모든 것이 캄캄했다.

김정일 방중 때마다 한국 언론들은 야단법석의 숨바꼭질을 벌인다. 방중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과 중국은 동선과 면담 내용은 물론 방중 여부마저 철저히 비밀로 한다. 하지만 한국 언론들은 김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하듯 보도한다. 정보는 제한돼 있고 많은 부분은 추측과 전언에 근거한 퍼즐 맞추기일 수밖에 없다. 부정확한 보도는 물론 많다. ‘김정은 방중’이라는 대형 오보는 그 일부일 뿐이다.

김 위원장이 방중할 때마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모든 언론이 단결해 공식 발표가 나오기 전에는 방중했다는 확인된 사실 외에는 어떤 보도도 하지 말고, 발표가 나온 뒤 확인된 사실을 기초로 그때부터 이면과 의미를 추적해보면 어떨까. 상상은 이번에도 현실이 되지 못했다.

특별열차는 돌아가고 떠들썩한 먼지는 가라앉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의 이례적으로 잦은 방중은 중국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가 심화되고, ‘중국이 관리하는 북한’의 구도가 굳어지고 있음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시간 안에 북한 경제를 살리고, 체제 안정을 보장받고, 후계구도의 기틀을 만들려는 도박을 벌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의 대화에도 한때 판돈을 걸었으나,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다는 초조함이 묻어난다. 미국과의 대화도 시간만 허비하게 했을 뿐 결실이 없었다. 이제는 중국만이 유일하게 남은 카드다. 그는 지난 3차례의 방중에서 중국 지도부를 만나고 중국 곳곳을 돌아보면서 ‘중국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지’ ‘중국이 동해 출항권 때문에 나선 항구만 이용하고 투자는 제대로 안 하는 것 아닌지’ 점검하고 또 점검했을 것이다.

이제 결론은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제한적인 개혁개방과 북-중 경협이 이미 초읽기에 들어가고 있다. 황금평과 나선에서 이미 기반공사와 도로 공사가 시작됐고, 곧 북-중 경협을 선언하는 공식 행사가 열릴 것이라는 소식도 나온다.


한국을 향해서는 ‘남한이 없어도 우린 중국과 잘 살 수 있다’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베이징 남북 비밀접촉에서 한국 정부 당국자들이 정상회담을 제의한 내막까지 폭로해버렸다. 외교 상식을 벗어난 이런 초강수를 통해 북한은 미국을 향해 더는 남북대화를 할 수 없으니 알아서 하라며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한-미 동맹을 강화해 북한을 무릎 꿇리겠다던 한국의 전략은 처참한 실패로 드러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이라는 변수로 인해 애초부터 실현 가능성이 없던 전략을 고집한 결과다. 중국은 북한을 움직일 지렛대와 한반도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됐다. 미국은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아시아·태평양의 문제들을 중국과 협상해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강대국이 운전대를 쥔 두 대의 열차에 각각 올라탄 채 남북한은 서로 다른 궤도로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것 같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특파원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