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5.19 22:14
수정 : 2011.05.19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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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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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70일이 돼간다. 원전은 지금도 날마다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을 내뿜고 있지만, 250㎞ 떨어진 도쿄의 대기중 방사선량은 이제 거의 사고 전 수준으로 낮아졌다. 도쿄 수돗물에서도 지난 3일 이후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걱정은 오히려 커져만 간다. 먹을거리 불안 때문이다.
세포분열이 활발한 아이들의 몸은 어른보다 방사능에 훨씬 취약하다. 5살 미만 어린이는 20~30대 어른의 3~4배가량 방사선 감수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내 아이들이 학교에서 먹고 있는 급식은, 집에서 먹는 음식물은 과연 안전한가? 도무지 그렇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일본 정부의 ‘방사능 규제치’는 매우 느슨하다. 학교에서 옥외활동을 제한하는 방사능 기준치를 일본 정부가 ‘연간 누적피폭치 20밀리시버트’로 정했을 때, 그 비정함에 놀랐다. 성인 1000명 가운데 1~2명이 추가로 암에 걸릴 위험이 있다는 방사선량인데, 어린이에게도 어른의 ‘피난 기준치’를 적용한 것이다. 피난구역을 확대해 지금 큰 비용을 들이기보다는, 나중에 암에 걸린 이들에게 선별 배상하는 쪽이 훨씬 싸게 먹힌다는 차가운 계산에 따른 것일 게다.
음식물 방사능 규제도 느슨하긴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 기준치만큼 방사능을 함유한 물과 식료품을 먹으며 1년간 지낸다면, 17밀리시버트를 피폭하게 된다. 물론 대기나 토양으로부터의 외부 피폭, 호흡을 통한 내부 피폭은 별개로 이뤄진다. 일반 성인의 연간 피폭 허용치는 1밀리시버트다.
방사능 오염은 확산되고 있다. 최근엔 원전에서 300㎞나 떨어진 도쿄 남서쪽 가나가와현의 찻잎에서도 채소 기준치(㎏당 500베크렐)를 넘는 양의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다. 그러나 방사능에 오염돼 출하가 중단됐던 각지의 채소·우유 등은 지금 대부분 출하 제한이 해제됐다. 오염 정도가 기준치만 밑돌면 모두 유통된다는 게 불안을 키운다.
일본 정부는 원전 주변 바다의 해산물에 대해서는 방사능 검사 자체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있다. 방사능이 대량 검출될 것이 뻔하기 때문일 것이다. 플랑크톤을 먹는 까나리에선 방사능 오염이 이미 확인됐다. 방사능을 몸에 축적한 생선이 잡히는 것도 시간문제다. 바닷물고기는 헤엄쳐 다니는 까닭에 일일이 검사를 해보지 않는 한 안심하기 어렵다. 한 일본인 지인은 “이제 참치도 먹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고서야, 원전이 얼마나 위험하고 비효율적인 것인지를 깨닫고 나는 반성하고 있다. 원전은 핵분열 때 나오는 열로 물을 데워 그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핵연료에 쉼 없이 물을 붓지 않으면, 그것은 핵무기로 변해버린다. 100만㎾짜리 원자로 1기가 연간 만들어내는 방사성 물질은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1250개 분량이다. 그 방사능을 품고 있는 사용후 핵연료(1기당 연간 30t)는 이번 후쿠시마 원전 3·4호기에서 보듯 조금만 관리를 잘못해도 큰 사고로 이어진다. 짧게는 100년, 길게는 수만년이나 잘 보관해야 하니, 그 비용도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원전 원료인 우라늄은 석유보다 매장량이 제한돼 있다.
그런 원전을 ‘지진 천국’에 무려 54기나 만든 역대 일본 정부의 의사결정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의 원전이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일깨웠다. 오염 확산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번이 마지막 사고라고 단정할 근거는 전혀 없다. 심각한 위험이 확인된 지금, 한국인에겐 “원전을 멈춰세우라”고 일본에 요구할 권리가 있다. 아니, 그렇게 요구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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