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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21 20:13 수정 : 2011.04.21 20:13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지난 19일 중국 산둥성 지난시 탕왕진 시골 마을에서 39살 농민 한진이 목을 매 자살했다.

칠순 노부모와 아내, 두 딸까지 여섯 식구의 생계가 달린 6무(畝)의 밭에 가득 심어 기른 양배추 가운데 팔린 것은 1무 분량뿐이었다. 남은 양배추들은 딱딱해지고 꽃까지 피어버려 팔 수 없게 된 채 밭에서 시들어가고 있었다.

지난겨울 이 지역에 100년 만의 가뭄이 들어 양배추가 더디게 자랐고, 다른 지역에서 양배추가 쏟아져 나오는 시기와 겹쳐 가격이 폭락했다. 양배추 한 근 가격이 0.08~0.1위안(약 13~16원)으로, 여섯 포기가 물 한 병 값이었다. 지난해 아이들의 학비를 마련하려고 기르던 양들이 전염병에 걸려 죽어버려 1만위안의 빚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남편이 낮에 시장에 갔다 오더니 울면서 술만 마시다, 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고 그의 아내는 말했다.

<산둥상보> 등 중국 언론들이 농민 한진의 죽음을 전하던 그날, 상하이 모터쇼가 개막했다. 개막 첫날 영국 자동차회사 애스턴 마틴은 전세계에서 77대만 주문제작되는 명품 스포츠카 ‘원(One)-77’ 중 5대를 모터쇼에 내놨고 이미 모두 팔렸다고 발표했다. 대당 가격이 무려 4700만위안(약 78억원)짜리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로 유명한 독일 다임러의 ‘마이바흐-62S’ 상하이 스페셜 에디션 2대도 대당 1388만위안(약 23억원)에 첫날 모두 팔렸다.

중국은 거대한 두 개의 세계로 점점 더 뚜렷하게 나뉘고 있는 듯 보인다. 중국 혁명의 근원이었던 농민들이 생활고와 강제철거 등에 떠밀려 자살하는 동안, 자본주의의 첨단을 상징하는 전세계 명품산업을 ‘사회주의’ 중국이 구원하고 있다. 지난해 10억위안(약 1660억원) 이상의 자산을 가진 중국인이 1363명이고, 1000만위안(약 16억6000만원) 이상의 투자자금을 가진 부유층이 50만명이 넘는다고 중국 언론들은 보도한다. 중국 정부가 올해 빈곤선 기준을 하루 0.65달러 미만 생활자로 정하면 중국의 빈곤층은 1억명이다. 그나마 유엔이 정한 극빈층 기준인 1.25달러보다 훨씬 낮은 기준을 적용할 때 이렇다.

하지만 실용적인 중국인들은 참고 지내왔다. 부자들이 돈 좀 많이 쓰더라도 내 생활만 나아지면 되기 때문이다. 지난 몇년 동안 중국 경제가 부동산 거품에 과도하게 의존해 급성장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베이징 집값은 지난 8년 동안 800% 올랐다. 일반 직장인의 월급으로는 평생 집을 살 수 없다. 중국에서 집 없는 남성이 결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올해 들어서는 생필품 물가까지 폭등했다.

마오쩌둥 시대의 향수를 내세운 보시라이 충칭 당서기가 뜨는 것은 중국인들의 절망감 수치가 치솟고 있음을 상징하는 정치적 현상이다. 보시라이 당서기가 내세우는 ‘충칭모델’은 대규모 외부 자본을 유치하되 수익을 민생 향상에 쓴다는 것이다. 200만가구에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해주고 농민들을 도시로 받아들이겠다는 경제 프로그램과 함께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범죄조직, 그들과 결탁한 고위 관리들을 일망타진하는 모습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홍색 노래’를 부르고 마오쩌둥의 어록을 외우게 하는 등 ‘홍색 문화’ 캠페인도 떠들썩하게 펼치고 있다. 최근 시진핑 국가부주석을 비롯해 중국 최고지도자 9명 중 5명이 충칭을 찾아가 보시라이의 정책을 극찬했다.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보시라이가 백성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한 것은 덕의 정치”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충칭모델’이나 ‘12·5계획’(제12차 5개년 계획)처럼 빈부격차를 타파하고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중국 정부의 청사진들이 현실로 실현될지, 아니면 일부 세력의 ‘정치적 승부수’로만 이용되고 끝날지가 중국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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