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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14 20:16 수정 : 2011.04.14 20:16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2009년 여름, 워싱턴 특파원으로 왔을 때 기름값은 대략 갤런(3.785ℓ)당 2달러 정도였다. 2년이 채 안 된 지금은 4달러다. 언제부턴가 주유소 기름값 표지판을 보는 게 습관이 됐다. 미국 언론들도 기름값 폭등으로 인한 소비 감소와 이로 인한 경기 재침체를 우려한다. 자동차 없이는 꼼짝할 수 없고 이동거리가 긴 미국에서 기름값은 한국보다 더 민감한 관심사다.

하지만 미국에선 정부가 정유회사더러 기름값을 내리라거나, 여론이 정부더러 세금 깎으라거나 하는 식의 논란은 거의, 아니 전혀 없다. 목 좋은 곳엔 도로 양쪽에 주유소가 다닥다닥 붙어 있고 외국 정유사까지 들어와 있는 완전경쟁 시장에서 짬짜미가 끼어들 틈이 없어 정부가 나설 공간도 없다. 또 유류세는 주정부가 관할하는 주세여서 연방정부 사안도 아니다.

그런데 미국 기름값을 한국처럼 리터 단위로 환산하면 1093원이다. 한국의 절반도 안 된다. 세금 때문이다. 버지니아주 유류세율은 2%(기타 세금을 포함한 미국 전체 유류세 비중은 13%)로, 주 소비세율(5%)이나 국세인 소득세 최저율(10%)보다 훨씬 낮다. 지난해 한국의 휘발유값에 붙은 관세, 부가가치세, 교통에너지환경세, 교육세, 주행세 등을 다 합한 세금 비중은 54.7%였다.

유류세 인하 요구가 거세지자, 기획재정부는 사실상 ‘불가’ 방침을 밝히면서 그 이유로 “유류세를 내리면 기름을 더 많이 사용해 소비자 부담이 더 늘어난다”, “아직 체감 유가가 (유류세 인하를 단행한) 2008년에 비해 약한 수준이다”, “국제유가가 계속 올라 유류세를 인하해도 효과를 못 느낄 것이다”, “물가가 오른다” 등 구구절절한 이유를 댔다. 특히 “대형차 타는 사람이 소형차 타는 사람보다 유류세 인하 효과를 더 볼 수 있어 양극화를 확대한다”는 말은 말하면서도 이상했을 것이다. 그렇게 양극화 확대를 우려한 정부가 누진세인 소득세·법인세에는 그리 인심을 썼나? 그리고 에쿠스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 중 자기 주머니에서 기름값 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유류세 인하를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세수 감소’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유류세 관련 세금은 27조6460억원, 전체 세수의 13.2%다. 환경 차원에서 볼 때, 유류세의 급격한 인하는 부정적 측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정부가 ‘손 안 대고 코 푸는’ 유류세에 의존하는 현 조세체계는 지금부터라도 바꿔나가야 할 것 같다. 세수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소득세·법인세 등 직접세 비중은 52.2% 수준으로, 선진국의 70~80% 수준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미국은 개인 소득세가 총조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2%인데, 한국은 14.6%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 들어 소득세·법인세·부동산세 등은 계속 내렸다. 이른바 ‘부자 감세’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유류세와 부가가치세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소득세·법인세를 내리면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말을 지금도 믿는 사람이 있을까?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이래 지속적인 감세 정책과 국방비 지출의 결과가 결국 ‘정부 파산’ 위기에 직면한 오늘의 미국이고,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와 4대강 사업의 결과가 ‘공적채무 410조원 증가’로 나타났다. 조세부담률도 2007년 21%대에서 감세정책으로 지난해 19.3%로 떨어졌다. 세출 측면에서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복지예산은 27.7%로 선진국의 40%대와 큰 차이가 있다. 유류세만 북유럽 수준인 것이다.

부자 자녀들에게 밥 한끼 주는 것도 그리 아까워할 정도로 세금을 소중히 여긴다면, 반대로 밥 한끼 이상의 세금을 더 거둬들일 순 없는 건가? 미국 기름값 얘기 하다 너무 멀리 왔다.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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