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4.07 19:59
수정 : 2011.04.07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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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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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던 3월15일 영국의 일간지 <선>은 1면 머리기사에서 “수천명이 방사능 오염을 우려해 도쿄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독일 일간지 <빌트>는 도쿄전력이 원전의 오염수 1만여t을 앞바다에 버리기 시작하자, 지난 6일 ‘일본은 태평양 전체를 오염시키려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게 불쾌했는지 일본의 보수지 <요미우리신문>이 7일 “공포를 부채질하는 과장보도”라며 “이런 보도가 외국인의 발걸음을 일본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요미우리신문>은 유럽 언론만 거론했지만, 도쿄에선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도 꽤 화제에 올랐다. 도쿄의 한국 특파원들이 한국의 언론 보도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는 얘기도 들린다. 너무 위험이 과장되지 않도록 보도에 신중을 기해달라며 간곡히 호소하는 재일한국인들의 전자우편을 나도 몇번 받았다. 그럴 때면, 지난해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마치 남북간 전면전이라도 일어난 듯 보도하던 일본 언론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잘잘못을 따지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위험에 대한 체감은 아주 상대적인 것 같다.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당면한 위험의 정도를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한다. 반면 그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은 사소한 위험에도 크게 반응한다.
얼마 전 다녀온 후쿠시마 원전 남쪽의 이와키시 사람들은 대기 중 방사능 수치가 결코 낮지 않음에도 매우 태연했다. 그들은 “누적 피폭량이 연간 1밀리시버트(mSv) 이하면 아무 문제가 없고, 20밀리시버트가 넘게 되면 그때 피난해도 된다고 전문가들이 말하더라”고 했다. 집을 떠나기 어려운 상황이라, 방사능 공포를 의지로 억누른 것일 게다. 반면, 지금 도쿄의 엄마들은 수돗물에서 더는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지 않음에도 아이들에게 생수를 마시게 한다. 후쿠시마현의 채소와 이바라키현의 어패류만이 아니라 지바현 식재료까지 구입을 꺼리고 있다. 그들은 ‘도쿄를 떠나지 않고 견딜 만한 수준’까지는 위험을 적극 인식하는 것 같다.
한국 하늘의 공기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고, 방사능비가 내린다고 요즘 시끄럽다. 검출된 방사능 수치를 보면, 그렇게 위험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7일 새벽 제주도에 내린 비에서 검출된 방사성 요오드는 1ℓ에 2.02베크렐, 세슘137이 0.538베크렐이었다. 도쿄에 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에서 방사성 요오드가 가장 많이 검출됐을 때는 그 100배가 넘는 210베크렐이나 나온 바 있다. 나는 그 물로 몸도 씻고, 밥도 지어 먹었다. 달리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기준치란 1년을 계속 쓰면 해로운 수준을 규정한 것”이란 전문가들의 설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나도 지금 서울에 있다면 방사능이 섞인 그 비를 맞고 다니지는 않을 게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우리에게 ‘과연 어느 정도까지 원전의 위험을 감수할 것이냐’고 묻고 있다. 이번 사고에서 보듯 원전 사고는 피해 범위가 매우 넓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전력 생산을 원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그런 사고가 결코 일어나지 않을까? 일본과 달리 한국엔 대규모 지진이나 해일(쓰나미)이 없지 않으냐고 어떤 이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번 동일본 지진은 1000년 주기의 ‘센다이 대지진’이란 해석이 많다. 일어날 수 없는 사건투성이가 바로 역사 아니던가. 지진만 위험한 게 아니다. 우리는 남북간 첨예한 군사적 긴장 속에 살고 있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 정말 냉철하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jeje@hani.co.kr
정남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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