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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24 19:09 수정 : 2011.02.24 19:09

정남구 도쿄 특파원

정남구
도쿄 특파원

지난 2009년 1월 검찰이 ‘미네르바’로 불리던 인터넷 논객 박대성씨를 긴급체포했을 때, 많이 놀랐다. 세계경제가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고 ‘7% 성장’을 외치며 헛손질을 하다 사실상 외환위기를 자초한 정부가 한 인터넷 논객에게 분풀이를 하려 했던 발상의 치졸함 때문이었다.

검찰은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2008년 12월29일 ‘정부가 금융기관 및 수출입 관련 주요 기업에 달러 매수를 금지하라고 긴급공문을 보냈다’는 등의 글로 국가신인도와 외환시장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기소했다. 미네르바의 그 글이 나오기 닷새 전, 재정부 관리는 기자들에게 “수출입기업과 금융기관 등에 달러 매수를 하지 않도록 협조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미네르바의 글이 정부의 행태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고 있었다. 실제 기소가 이뤄진 뒤 나는 그가 인터넷에 글을 올린 날을 전후해 서울 외환시장의 거래액과 환율 변동을 자세히 조사해보기도 했다. 정말 아쉽게도, 그의 글은 외환시장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지금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은 내가 당시 그 일을 ‘치졸하다’고 생각했던 게 그리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치졸함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모독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던 한 청와대 출신 인사를 재판 기간에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걸려 약의 도움으로 겨우 견뎌내고 있었다. 그는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미네르바도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이 수사를 받고, 기소를 당해 재판정에 서는 것은 당사자로서는 고문을 받는 것과 같다. 국가기관의 ‘무고’는 처벌 대상이 아닌 까닭에, 그런 일은 악의있는 권력에 의해 언제든 재현될 위험이 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김만복 전 원장이 재직중 취득한 기밀을 누설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이 곧 수사에 착수했다. 김씨가 일본의 월간지 <세카이>(세계) 2월호에 ‘분쟁의 바다 서해를 평화와 번영의 바다로 만들기 위해’라는 제목으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글을 실은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월간지가 발간된 지 일주일쯤 지나, 보수언론들이 이 글을 문제삼았고, 보수단체들이 잇따라 그를 고발하라는 성명을 냈다. 으레 그렇듯이 일본을 대표하는 출판사 이와나미서점에서 발행하는 <세카이>를 ‘좌익 성향’의 잡지로 몰아붙이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검찰이 실제 그를 기소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글이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진 과정은 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김씨가 <세카이>에 실은 글은 이미 지난해 10월 <다시 한반도의 길을 묻다>(한반도평화포럼 편, 삼인사)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출판된 책에 실린 것이란 사실은 확실히 해둬야 한다. <세카이> 편집부는 이 글이 11월 연평도 포격사건 뒤 사건을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고, 김씨에게 번역해서 싣겠다고 요청해 허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세카이>에는 연평도 사건을 어떻게 보는지 김씨의 ‘후기’도 덧붙여졌지만, 이 후기에는 위키리크스 폭로 자료를 인용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있을 뿐, 국정원장 재직 시절의 이야기는 담겨 있지 않다.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불법·부당한 것이었다는 지난해 8월 ‘한일 지식인 공동선언’의 일본 쪽 산파 가운데 한 사람인 오카모토 아쓰시 <세카이> 편집장은 “한국의 정보기관은 일본의 잡지는 보지만, 한국에서 출판돼 있는 서적은 보지 않느냐”고 되물으며 “한국에서 다시 국가에 의한 언론 위협과 억압이 행해지는 것을 깊이 우려한다”고 말했다. 단지 권력을 비판했다고 수사를 받고 재판정에 서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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