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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06 21:09 수정 : 2011.01.06 21:09

정남구 도쿄 특파원

서울의 강동구와 같은 한자를 쓰는 일본 도쿄 고토구의 도요스역 근처에 작은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이 일대는 오래전 쓰레기매립장이었다. 제국주의 일본은 한반도에서 끌고온 이들을 이곳에 강제수용했다. 경상도와 제주도 출신이 많았다. 해방이 되고도 귀국하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이 거친 땅에 뿌리를 내렸다. 그들은 일제에 빼앗겼던 우리말과 글을 자식들에게 가르치자고 학교부터 만들었다. 힘 모아 운동장을 다지고, 건물을 지었다. 도쿄 조선 제2초급학교, 또는 에다가와 조선학교라고 부르는 학교다.

1946년 1월 50명의 학생이 입학한 이래 지금까지 이 학교에서 1400명 가까이가 졸업했다. 우리말로 이름 석자 겨우 말하던 이들이 우리말과 글을 배우고, 역사와 전통문화를 배워갔다. 졸업식날이 되면 학생도, 선생님도, 학부모도, 마을의 이웃도 모두 울었다. 헤어짐의 아픔에 울고, 차별의 서러움에 울고, 역경을 이겨낸 감동에 울었다. 학교는 그들에게 고향 같은 존재였다. 남쪽의 조국은 그들을 나몰라라 했다. 그나마 북쪽이 학교에 물질적·정신적으로 많은 지원을 했다. 이 학교 교무실엔 지금도 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해가 저물어가던 지난달 29일 학교에 갔다. 담장의 그물은 곳곳이 찢겨 있었고, 46년의 역사를 가진 남루한 2층건물 안엔 비가 샌 자국이 곳곳에 보였다. 천장은 곳곳이 뜯겨 있었다. 건물 안에서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의 영화 <박치기>의 주제가였던 ‘임진강’이 흘러나왔다. 이날은 26일 시작된 ‘야키니쿠(불고기) 아티스트 액션’ 행사의 마지막날이었다. 예술가들이 모여 사진과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노래와 행위극을 하고, 영화도 상영했다. ‘에다가와 조선학교 교사의 소멸과 재생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 이 낡은 건물은 이제 다음주부터 철거된다. 이 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추억의 건물이 사라지기 전에 눈에 담아두려고 많이 찾아왔다. 누군가 “구교사야 정말 고마웠어. 너는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어”라고 써서 복도 벽에 붙여놓았다.

에다가와 조선학교가 마침내 새 건물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나는 너무도 기쁘다. 그들은 그동안 얼마나 험한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던가?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무상으로 쓰고 있는 땅을 내놓으라고 2003년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온 것은 가장 큰 시련이었다. 졌다면 학교는 사라졌을 것이다. 많은 일본인들이 소송을 도왔고, 민단과 총련도 하나 되어 힙을 합쳤다. ‘작은 통일’이었다. 3년여 만에 화해권고 판결이 나와, 시가의 10분의 1 가격에 터를 살 수 있게 됐다. 그때의 합심이 교사를 새로 짓기 위한 모금으로 이어졌다. 새 교사를 짓는 데는 모두 4억엔(약 52억원)이 들었다. 그 가운데 8000만엔이 한국에서 모금돼 전해졌다. 2007년 <에스비에스>(SBS)가 방송한 ‘도쿄 제2학교의 봄’이란 스페셜 프로그램이 특히 큰 힘이 됐다. 다음주 개학하면 아이들은 이제 새 건물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나 고난은 아직 다 끝난 것 같지 않다. 이번에 6학년 12명이 졸업했는데, 내년 입학생은 4~5명에 그칠 듯하다.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를 ‘북한학교’로 몰아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학생의 절반이 ‘한국’ 국적이지만 한국 정부에선 관심이 없다. 도쿄도는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애초 액수가 적으니 별 타격은 아니지만, 구청이 학부모에게 직접 지급하는 보조금까지 끊는다면 이는 상당한 타격이 된다. 물론 지금까지 온갖 역경을 다 헤쳐온 그들이 여기서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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