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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25 21:34 수정 : 2010.11.26 15:32

정남구 도쿄 특파원

지난 1998년 11월18일, 금강산을 향해 첫 출항을 하던 현대금강호가 어두워진 동해항을 뒤로하고 울리던 뱃고동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것은 단순히 남북 사이 뱃길을 여는 소리가 아니었다.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그 뒤에도 잦은 충돌로 상처투성이가 돼 있던 한반도의 심장을 깨워, 다시 피를 돌게 하는 소리였다. 취재기자로 승선해 있던 나도 누구 못지않게 들떠 있었다. 이튿날 새벽 안개 낀 장전항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그러나 현실이 슬플 때, 지난날 기뻤던 일들도 더는 좋은 추억이 되지 못한다. 지난 23일은 4박5일간의 금강산 관광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내가 금강산에서 있었던 감격스런 일들을 기사로 쓴 지 꼭 12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런 그날, 연평도 곳곳에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있는 장면을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의 긴급뉴스로 보았다. 걱정을 담은 일본인 친구들의 문자메시지가 휴대전화를 울릴 때까지 잘 믿기지가 않았다.

“어떻게 그런 나라와 통일을 할 생각을 해요?”

얼마 전 만난 젊은 일본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렇게 되묻던 일이 생각났다. 많은 일본인에게 북한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열세살 일본 소녀 요코타 메구미(1977년 납치)를 비롯해 많은 일본인을 멋대로 끌고 간 나라다. 아무렇지도 않게 테러를 저지르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나라다. 분단의 아픈 속내와 곡절을 알 리 없는 그들에게 이번 연평도 포격은 북한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확고히 굳히는 또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번 사건이 결코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니다. 거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북은 연평도의 민간인을 무차별 공격했다. 군인 외에도 2명의 민간인이 숨졌고, 다수가 다쳤다. 북은 그런 사태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북은 남쪽이 먼저 북쪽 영해로 사격했다고 강변하지만, ‘해상군사경계선’을 내세워 정당화할 수 있는 성격의 공격이 아니다. 북이 어떤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어떤 의도로 이번 사건을 일으켰든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이는 반민족적인 범죄행위다.

금강산에 배가 뜨고 난 뒤, 남북은 그동안 두 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남북 정상이 서로 따뜻이 손을 잡고, 화해·공존의 길로 나아가자고 약속할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그 손들이 ‘피묻은 손’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날 북이 저지른 것으로 여겨지는 여러 불미스런 사건들은 이미 고인이 된 김일성 주석이 주도한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다르다. 북은 최고통치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에 죄없는 남한 민중의 피를 묻혔다. 이제 어느 누가 그 피묻은 손과 진정으로 악수할 수 있겠는가.

북을 향한 차가운 시선을 일본에서는 아주 빠르게 감지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총련계 조선학교 고교 무상화 적용 결정을 또다시 보류할 것을 시사하고 나섰다. 일본 사회에서 총련계 재일동포들에게 가해지는 유무형의 압박도 더 커질 것이다. 동포단체의 한 간부는 “‘하나된 조국’의 국민이 되겠다며, 평생을 ‘조선’적으로 살아온 이들 가운데도 눈물을 머금고 대한민국 국적을 택할 사람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의 평화와 공존, 통일을 진정으로 갈망했던 이들의 가슴에도 큰 구멍이 뚫렸다. 천안함 사건이 북의 소행이라는 정부의 발표에 넘쳐나는 허점을 파헤치며, 사태 악화를 어떻게든 막으려 애쓰던 이들에게, 북은 ‘우리는 그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다’고 사실상 선언한 꼴이 됐다. 북이 연평도에 쏜 대포는 민족의 가슴에 맞았다. 북은 이를 직시해야 한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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