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9.23 22:27
수정 : 2010.09.23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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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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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일본 오사카 지방법원은 ‘부하에게 허위 공문서 작성을 지시’한 혐의로 오사카지검 특수부가 기소한 전 후생성 국장 무라키 아쓰코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부하 직원인 가미무라 쓰토무 계장에게 장애인단체에 무료 우편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위 증명서를 만들어주라고 지시했다는 검찰의 주장을 물리친 것이다.
검찰은 조사 단계에서 ‘무라키 국장이 지시했다’고 밝힌 가미무라의 진술조서를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가미무라는 재판에서 단독범행임을 주장했고, 법원은 “검사의 (진술) 유도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진술조서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무죄 판결이 나오자 일본 언론들은 ‘어설프고 오만한’ 검찰의 행태에 일제히 회초리를 들이댔다. 일부에서는 검찰 특수부의 존폐 논란을 거론하기까지 했다.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대검찰청은 이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마에다 쓰네히코(43) 검사를 21일 밤 구속했다. 마에다 검사는 가미무라 피고인의 허위 증명서 발급 기록을 담은 플로피디스크의 최종 업데이트 날짜를 ‘2004년 6월1일’에서 ‘2004년 6월8일’로 고친 혐의를 받고 있다. 비록 법정에 증거로 제출하지는 않았지만, 바뀐 내용은 ‘무라키 국장이 6월 상순에 허위 증명서 작성을 지시했다’는 기소 내용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검사가 증거를 직접 조작한 것이다.
검찰의 자존심이라는 특수부의 현직 검사가, 그것도 ‘오사카 지검의 에이스’로 불리던 촉망받던 검사가 증거를 조작해 구속된 놀랄 만한 사건에 일본이 지금 발칵 뒤집혔다. 대검찰청은 오사카 지검 고위층이 조작에 관여했거나, 알고도 묵인했는지를 조사중이다. 일본 검찰 특수부는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일본 검찰 특수부의 한계는 이미 여러차례 지적된 바 있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맡은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간사장의 정치자금 의혹사건 수사는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검찰은 힘을 다 쏟아부어 오자와를 샅샅이 조사했지만, 기소할 만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고 결국 불기소했다. 검찰은 탈세죄로 수감된 건설회사 회장의 진술 하나에만 의존해 수사를 벌였다. 전 <교도통신> 사법팀장을 지낸 이시가메 마사오는 검찰의 오자와 불기소 결정을 ‘특수부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사건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일본의 여러 전문가들은 ‘살아 있는 권력과 싸워왔다’는 일본 검찰 특수부의 ‘신화’는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해왔다. 따지고 보면, 검찰 특수부가 단죄한 살아 있는 권력들은 1976년 구속된 다나카 가쿠에이에서, 최근 검찰의 창끝을 정면으로 받은 오자와 이치로에 이르기까지 권력투쟁의 한 축에 서 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비주류였다. 검찰이 부패권력을 단죄한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권력투쟁을 이용하고 개입한 것이지 사명감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권력의 진짜 폐부를 찌른 게 아니라는 것이다. 언론인 우오즈미 아키라는 이번 오자와 수사도 ‘관료개혁을 막기 위한 검찰의 정치수사’라고 단언했다. 물론 지금껏 승리는 검찰이 독차지해왔다. 기소를 면한 오자와도, ‘구시대의 정치인’으로 낙인찍혀 정치생명이 위태로워졌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어둠 속 검찰의 치부가 또렷이 드러나게 됐다. 검사가 유죄 입증을 위해 증거까지 조작한 사실은 제대로 감시·견제받지 않는 수사권력이 어떻게 자신들의 주인인 국민에게 흉기로 돌변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사냥감이 없어지면 (주인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얘기는 이제 옛날 얘기고, ‘사냥감이 없어지면 사냥개가 주인을 잡아먹는다’고 해야 할 판이다. 남의 나라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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