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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09 19:29 수정 : 2010.09.09 19:29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부러운 것 중 하나가 집이었다. 워싱턴 근교에 잔디밭이 깔린 뒷마당, 차 2대짜리 차고, 방 3개, 욕실 3개, 지하실을 갖춘 2층짜리(지하실 방을 합하면 3층) 개인주택의 집값은 지역에 따라 대략 30만달러(3억6000만원)~70만달러(8억4000만원) 정도다. 같은 규모의 집이 서울에 있다면 그 가격은 상상하기 힘들다.

미국인들은 보통 집값의 10~30% 정도(다운페이)만 내고 집을 구입한다. 나머지는 은행에서 융자를 받는다. 은행빚은 대개 30년에 걸쳐 연 3~4% 금리로 갚아 나간다. 그러니 젊은 부부들도 정상적인 직업만 있다면 집을 사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없다.

여기에 2000년대 들어 부동산 경기가 과열되면서 집값은 막 뛰었다. 미국인들은 오른 집값을 담보로 은행에서 ‘에퀴티 론’이라는 2차 융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 빚으로 자동차·가구를 바꾸고, 여행을 다녔다. 집값이 오를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집값 상승은 소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한계에 닿자 이자가 오르고, 융자금이 늘어나고, 소비를 줄여야 했고, 경기는 가라앉고, 집값은 폭락했다.

집값 시세가 은행에 내야 하는 융자금 총액보다 낮은 이른바 ‘깡통주택’이 미국 전체 주택의 25%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주택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국책 모기지업체인 프레디맥과 패니메이를 동원해 대출금을 못 갚는 주택을 사들였다. 개인에게는 융자기간을 늘리고 융자금을 깎아주는 모기지 원금 탕감, 신규주택 구매자에게는 최고 8000달러까지의 세금 혜택 등 갖은 수단을 다 썼다. 세금 혜택으로 신규주택 판매가 지난 3월에는 전월 대비 30% 급증했고, 4월에도 15% 늘었다. 그러나 세금 혜택이 마무리된 5월에는 전달에 견줘 33% 줄었다. 7월 주택거래 실적도 1년 전보다 26% 줄었다. 공적자금을 투입한 프레디맥과 패니메이는 손실을 안고 주식시장에서 퇴출됐다.

이제 정부도 더는 대책이 없다. 집값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집을 내놓으려는 대기수요가 엄청나 앞으로도 최소 3년간은 집값 회복이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미국의 집값은 주택경기가 가장 좋았던 2006년의 70%선이다. 이코노미스트와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선 아예 “그냥 내버려두라”는 식의 대책 아닌 대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시장의 가격조절장치에 맡겨 가격이 떨어질 만큼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반등하도록 하는 것이 인위적 정책수단을 무리하게 동원하는 것보다 낫다는 주장이다. 침체의 골은 더 깊을지언정 기간은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 전제돼 있다.

미국 정부도 이젠 주택정책을 ‘소유’에서 ‘임차’ 위주로 바꾸는 쪽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준비중이다. 집을 살 때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돈(다운페이)의 금액을 대폭 높이고, 주택대출 금리를 올리고, 상환능력이 부족한 저소득층에 대해선 집을 사는 게 어렵도록 만드는 것이다.

눈을 돌려 한국을 봐도 부동산시장이 아우성이다. 정부는 대책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를 꺼내들었다. 한마디로 은행 빚을 내 집 사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이미 120%에 육박한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 직전 수준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5%라고 할 때, 1억원을 빌리면 매달 42만원을 이자로 내야 한다. 20년 상환 조건으로 원금까지 갚는다면, 거칠게 계산해 이자 포함 매달 84만원을 내야 한다. 나는 그 빚을 내 집을 살 생각은 없다. 미국인들이 집을 안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집값이 더는 오르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동산대책에 미국 부동산시장이 어른거린다.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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