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8.26 21:23
수정 : 2010.08.2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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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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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쏟아지던 지난 주말 차오창디에 갔다. 차오창디는 베이징 외곽에 있는 미술관 지역이다. 외딴 골목들에 숨어 있는 미술관들에서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오려는 중국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본 것은 모순이었다. 서양 예술을 능숙한 솜씨로 소화한 작품들부터 중국화의 고전적 화풍과 서양 영화광으로서의 자의식을 뒤섞어 욕망을 드러낸 작품, 중국적 요소들을 잔뜩 집어넣어 맛을 내려다 소화불량 상태에 빠진 듯한 작품들이 이들의 내면을 엿보게 한다. 진시황릉 병마용, 고대 춘화, 문화대혁명, 돈에 눈이 먼 자본가까지… 중국은 할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그걸 완전히 소화해 바깥세계에 이해시키기엔 시간이 걸릴 듯하다. 작품들에선 세계의 존경을 받는 대국이 되려고 애쓰지만 아직은 소통부재 상태인 현실,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하는 중국의 고민이 겹쳐 보였다.
최고 흥행기록을 세우며 중국인들을 울리는 영화 <탕산대지진> 속의 모순은 더욱 절박하다.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리던 1976년 7월28일 후베이성 탕산에 대지진이 일어나 24만명이 죽었다. 콘크리트판 밑에 쌍둥이 남매가 깔려 있다. 한쪽을 들면 아들이, 반대쪽을 들면 딸이 짓눌려 죽는다.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둘 다 죽는다. 엄마는 아들을 구하기로 가슴이 찢어지는 결정을 내린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딸은 평생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안고 살다 30년 뒤 엄마 그리고 자신과 화해한다. 뭉클한 화해 뒤에 겹쳐 보이는 건, 개혁개방 30년 동안 중국이 경험한 변화, 그리고 개혁개방 초기 선부론을 내세워 연해지역 도시인들에게 부를 선사하고, 농민과 내륙지역의 거대한 국민들을 빈곤 속에 버려둬야 했던 중국 정부가 이제 좀더 평등하고 고루 잘사는 ‘조화사회’를 만들어 화해하자고 외치는 현실이다.
한 아이만 살려야 했던 엄마처럼, 중국은 여전히 많은 모순을 껴안고 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빈부격차를 안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다. 끊임없이 고위관리들의 천문학적 부정부패 사건이 터지고, 어마어마한 부동산 거품과 지방정부 부채가 경제·사회를 위협한다.
하지만 이게 중국의 전부인가? 중국 사회는 문제들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관리하면서 변화한다. 내수와 첨단기술 중심의 경제개발 모델로 전환하려고 빠르게 움직이고, 임금을 올리면서 노사관계도 바꿔가고 있다. 중국의 적응력, 관리능력, 역사적 시야는 13억의 중국을 대국으로 바꿔가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미국과의 정면대결도 불사할 듯 목소리를 높이던 중국이 최근 미국과의 화해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이 미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국민당을 상대로 20년 넘게 유격전을 벌여 승리했듯, 중국이 아직은 미국에 비해 힘이 부치는 현실을 인정하고 물러서지만 치고 빠지며 장기적 유격전을 준비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중국을 보고 있는가? 중국이 못살고 지저분한 일당독재 국가라며 애써 무시하거나, 중국이 2020년이면 세계 최강대국이 될 것이라는 환상, 중국이 내부 모순 때문에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극단적 시선이 교차한다.
한-중 관계가 수교 18돌을 맞았다. 검은 고양이도 흰 고양이도 아닌 중국의 역사와 현실과 모순을 우리의 시선으로 이해하고, 우리와 중국이 얼마나 깊숙이 얽혀 있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시선, 그동안 경제적 밀월 아래 덮어두었던 양국간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얘기하고 설득하고 돌파해가는 성숙한 관계를 기대한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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