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8.12 23:25
수정 : 2010.08.12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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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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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일본 젊은이들에게 ‘한국 하면 생각나는 사람’을 물었더니 ‘배용준’이란 대답이 가장 많았다. <한국방송>(KBS)이 그런 질문을 한국 젊은이들에게 던졌더니 ‘이토 히로부미’를 가장 많이 꼽았다고 한다. 이걸 보면, 일본 젊은이의 62%가 한국이 좋다고 하고, 한국 젊은이의 72%가 일본이 싫다고 대답한 것도 그리 이상할 게 없다.
양국 젊은이들의 속내를 좀더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최근 있었다. 지난 7일 도쿄 시부야의 <엔에이치케이> 스튜디오에서 20명씩의 양국 젊은이가 참가한 토론회가 열렸다. 5시간 남짓 이어진 녹화(14일 저녁 8시부터 2시간 반 방송)를 옆에서 지켜보고, 토론 참가자들을 따로 만나기도 했다.
문화를 주제로 한 토론은 뜨겁지 않았다. 차이를 존중하자는 공감대가 쉽게 형성됐다. 경제에 대한 토론에서는 상대의 장단점에 대한 섣부른 단정을 경계했다. 그런데 토론 주제가 역사로 넘어가자 분위기는 일변했다. 일본 젊은이들이 제기한 문제는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 사죄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일본이 말로는 사죄한다면서, 곧 다른 말을 하니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특별초대손님 두 사람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는 “역사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허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열린 공간이 허용된 덕에, 일본의 ‘역사 직시’가 오히려 진척돼 왔다고 그는 말하는 듯했다. 그의 말에서 나는, 일본인 모두가 한목소리로 사죄할 때 비로소 진정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태도가 과연 옳은지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배우 윤손하씨가 “내 앞에 있는 그 일본인이 가해의 당사자는 아니다”라고 한 말도 울림이 컸다. 우리는 일본인과의 대화에서 종종 이를 잊어버리곤 한다.
<엔에이치케이>의 이날 토론회 녹화는 결국 높은 톤의 언쟁이 오가는 가운데 막을 내렸다. 끝까지 한국 젊은이들이 납득하기 어려워했던 것은 ‘독도’ 문제였다.
전 총리 보좌관 오카모토 유키오가 “독도 문제는 곧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자, 이를 따지는 발언이 곧 튀어나왔다. 최양일 영화감독(재일 한국인)이 “독도 문제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때 보류하기로 한 사안이다. 그 역사를 모르면 안 된다”며 만류했지만, 한 토론자는 “일본이 독도 얘기를 할 때마다 식민지 시대를 생각하게 된다”고 항변했다. 양국 관계를 개선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라는 두 방송사의 질문에 일본에선 ‘정치적 대화’라는 답이 가장 많았으나, 한국 젊은이들은 ‘독도 문제 해결’을 꼽았다고 한다. 역시 그랬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10일 발표한 담화에는 독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가뜩이나 실망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내용이 포함된 방위백서가 곧 발표되면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까? 분명한 것은 일본에서 어떤 큰 지도자가 새로 나와도 독도 영유권 주장을 뒤집기는 이제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이 일본을 향해 마음을 열기는 앞으로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올해는 한-일 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될 수도 있는 100년에 한 번 있는 기회였다. 독도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간 총리의 담화가 한국인들의 마음을 열기에 역부족이었던 건 매우 아쉽다. 그러나 간 총리는 시민운동가가 아니다. 국민의 여러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총리다. 당 대표 선거를 앞둔 그가 정치적으로 유리할 것 없는 이번 담화를 위험을 감수하고 냈다는 사실은 기억해야 한다. 담화가 진심이 아니었다면, 굳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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