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8.05 18:50
수정 : 2010.08.0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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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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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2인자 자리는 묘하다. 언제라도 권력의 정점을 노려볼 수 있지만, 순간의 오만과 방심으로 최고권력자의 의심을 사 목숨을 잃을 위험도 크다. 중국 현대사에서 마오쩌둥의 2인자였던 류사오치(유소기)와 린뱌오(임표)는 문화대혁명의 와중에 비극적인 죽음으로 권력투쟁의 무대에서 내려왔다.
최근 중국에서 ‘2인자’가 다시 화두다. 국가외환국장을 겸직하는 이강 인민은행 부행장이 지난달 30일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사실상 이미 세계 2위의 경제강국”이라며, 중국이 일본을 제쳤다고 선언한 것이 신호탄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된 사실이지만, 1840년 아편전쟁에서 패해 ‘천하제일’ 자리에서 쫓겨나고, 1894~1895년 청일전쟁의 충격적 패배로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의 맹주 자리에서도 물러나야 했던 중국으로서는 드디어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강 부행장의 발표로 전세계 여론을 슬그머니 떠본 중국은 이제 더욱 자신을 다지고 경계하며, 미국과의 진검승부를 준비한다. <인민일보> 산하 국제전문지 <환구시보>가 3일 1면 전체에 걸쳐 실은 ‘세계 2위 자리에는 함정이 가득하다’는 기사는 미래를 위해 역사를 돌아보는 중국의 신중함을 보여준다.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 장융 주임은 이 글에서 “2차대전 이후 자본주의 진영의 2위 자리는 영국, 독일, 일본으로 계속 바뀌었고, 자본주의 시스템 밖의 2위 소련도 있었으나 미국은 이들 2인자들을 압박하며 여력을 주지 않았다”며 지난 60년 동안 미국이 어떻게 2위 국가들을 누르며 패권을 지켜왔는지를 설명한다. “미국은 수에즈운하 사건의 혼란을 틈타 영국과 프랑스를 내쫓고, ‘별들의 전쟁’으로 소련 경제를 망가뜨렸고, 환율 문제 등으로 일본 경제를 압박했다”는 것이다.
3일 <신화통신>도 “스스로에게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된다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묻고 냉정해져야 한다”는 사설을 실어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3600달러로 세계 124위이며, 일본의 1인당 지디피는 약 3만9000달러다. 간단히 말해 중국은 갈 길이 멀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오만한 2인자는 두렵지 않으나, 신중한 2인자는 위협적이다. 중국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미국과의 격차는 아직 크지만, 역사의 흐름을 돌아보며 마라톤을 준비한다.
야심만만하고 신중한 ‘넘버2’의 이웃인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미국과 중국이 최근 서해-동중국해-남중국해의 제해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한반도는 그 긴장의 열기가 분출되는 분화구 위에 앉은 상황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중국은 한국을 끌어당기고 동남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최강대국 미국에 맞서려는 ‘합종책’을 준비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은 일본·한국 등 동맹국의 고삐를 다잡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발을 내디뎌 베트남·필리핀 등 아세안 국가들을 일거에 끌어당기는 ‘연횡책’으로 중국의 전략을 일거에 뒤흔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당장 충돌을 무릅쓸 가능성은 낮다. 서로의 내공을 충분히 알고 있는 노련함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쟁의 격랑 속에서 한쪽으로 기우는 한국마저 마냥 안전한 것은 아니다. 대중국 무역에서 올 상반기에만 330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할 정도로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큰 한국이 군사·안보에서는 미국과 일본을 끌어들여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혐한정서가 중국에서 퍼지고 있는 것은 위험신호다. <환구시보>가 지난 4일 ‘한국을 힘으로 제압할 것인가, 설득해 중국 편으로 끌어들일 것인가’란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한 것을 보면, 중국 누리꾼 2만3499명 중 94.5%가 ‘한국을 힘으로 제압해야 한다’는 쪽을 선택했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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