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7.15 18:32
수정 : 2010.07.15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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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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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우리가 역사의 격랑 한가운데 서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런 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3월26일 천안함 침몰부터 지난 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 채택까지 100일 넘게 이어진 ‘천안함 외교’가 우리에게 세계와 한반도 주변 정세의 거침없는 변화와 복잡한 방정식을 온몸으로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직전인 5월 하순, 한국 외교통상부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중국도 국제사회에서 책임있는 대국으로 인정받으려면 언제까지나 북한 편만 들 수는 없다. 우리와 미국이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고 중국도 이번에는 돌아설 것”이라고 자신만만했다.
그로부터 두달도 지나지 않아 “안보리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북한의 반응, 그리고 여타 관련 국가들의 반응에 유의한다”는 조항이 들어간 의장성명이 우리 앞에 도착했다. 한국 일각에선 중국이 철저하게 북한 편을 든 탓이라며 중국 때리기에 나선다. 하지만 한-미 동맹으로 중국을 압박해 북한을 비난하게 하고, 동북아의 구도를 한·미에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고 장담하던 한국식 ‘호가호위’ 외교의 실체를 따져봐야 할 때다.
한국 정부는 중국의 부상으로 미·중의 전략적 경쟁과 긴장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쪽으로 기운 채 퇴로를 차단하고 질주해 왔다. 5월 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당시 한국 여당과 정부가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중국에 거칠게 항의한 데서 풍향은 분명해졌다. 천안함 조사 결과의 신빙성에 그토록 자신이 있었다면, 왜 처음부터 중국이나 러시아를 합동조사단에 동참하게 하고 미국·중국과의 등거리 외교를 시도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한·미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서해에서 미군 핵항공모함까지 동원해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로 하자, 사태는 동북아의 주도권을 둘러싼 미·중의 전략적 대결로 확대됐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직접 나서 훈련을 비판했고, 동중국해에서 실탄사격 훈련을 하고 이례적으로 훈련 모습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비판의 총구가 점점 더 한국을 정조준하는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한-미 서해 군사훈련에 대한 비판의 선봉에 섰던 관영 국제전문지 <환구시보>는 지난달 24일 사설에서 “한국과 일본은 경제적으로는 중국의 급행열차에 올라타고 싶고, 군사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분열증’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7일에는 “한국이 망령되게(妄) 황해(서해) 군사훈련으로 중국을 압박하려 한다”는 기사를 1면에 실은 데 이어 8일에는 “이명박 정부 취임 이후 한국은 정치·군사적으로 과도하게 친미적이 됐고, 냉전의 길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사설을 썼다.
천안함 외교가 한창이던 지난달 말 중국은 대만과 자유무역협정 성격의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 서명해 ‘경제적 통일’에 다가섰다. 이 과정에서 대만은 철저히 한국과의 경쟁을 겨냥해 석유화학·자동차부품 등 한국 기업들과 경쟁이 치열한 품목들을 관세 감면 대상 품목으로 요구했고, 중국은 이를 수용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2년 안에 이들 제품의 관세 5~15%가 폐지되는 상황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근심이 깊다.
이삼성 한림대 교수는 저서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에서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지난 2000년 역사를 분석하면서, 지배층과 지식인이 한 국가에 대한 충성 논리에 매달려 세계의 변화에 눈을 감을 때 한반도에는 비극이 찾아왔다고 지적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명한 진리처럼 받아들이는 한-미 동맹이 전략을 넘어서 이데올로기가 될 때,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담보할 전략에 대해 부단히 성찰하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게 된다”는 경고와 함께.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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