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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08 20:10 수정 : 2010.07.08 20:10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지난 7월4일은 234번째 미국의 독립기념일이었다.

미국인들에게 독립기념일은 국경일이라기보단, 가족축제에 가깝다. 독립기념일이 다가오면, 슈퍼마켓에는 불꽃놀이 용품이 쌓이고, 폭죽을 파는 임시가판대도 거리 곳곳에 생겨난다. 4일 저녁 무렵부터는 동네 어귀 곳곳에서 ‘쉬융’, ‘펑’ 하는 폭죽 소리가 한밤중까지 축포처럼 끊이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들도 매년 불꽃놀이 쇼를 펼친다. 특히 뉴욕, 워싱턴, 보스턴, 필라델피아 등 저마다 독립기념일과 인연이 깊은 동부 도시들은 좀더 화려하고 새로운 불꽃놀이를 놓고 매년 은근히 경쟁을 벌인다. 대도시의 20분짜리 불꽃놀이에는 대략 50만달러(약 6억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올해는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일부 중소도시들이 불꽃놀이를 취소했고, 시카고는 규모를 줄였다.

그럼에도 가장 심한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도 40여곳에서 불꽃놀이가 열렸고, 뉴욕 허드슨강 불꽃놀이에는 전망 좋은 테라스바의 2인 식사 포함 자릿값이 150달러(약 18만원)에서 1450달러(약 175만원)에 이르렀다. 당일 밤 허드슨강 유람선 7대의 티켓은 1주일 전에 매진됐다.

이런 떠들썩한 불꽃놀이가 아니어도, 독립기념일에는 가족들이 공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즐기는 게 일상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백악관에서 군인가족들을 초청해 바비큐 파티를 즐기며 함께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온 뒤 처음 맞는 미 독립기념일, 국회의사당 앞 불꽃놀이를 보러 가려다 엄청난 인파와 교통난에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런데 슈퍼에서 파는 폭죽과는 소리가 다른 ‘펑, 펑’ 하는 웅장한 폭죽 소리에 이끌려 집에서 불과 100m 떨어진 이웃 동네까지 슬리퍼 차림으로 갔다. 거기에선 시내 대형 불꽃과 거의 차이가 없는 폭죽을 웬 아저씨 한 분이 계속 터뜨리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빨강, 파랑, 노랑, 녹색의 형형색색 불꽃이 연방 터졌다. 어디서 왔는지 간이의자를 갖고나온 사람들이 맥주 한 캔씩 들고 편한 자세로 감상했고, 아이들은 얇은 이불을 길바닥에 깔고 반쯤 드러누워 있었다. 아이들 손에는 종이로 만든 성조기가 들려 있었다. 쇼가 끝날 무렵에는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미국 국가가 캄캄한 밤하늘에 울렸다. 미국 국가를 부르는 그들의 표정에서 세계 제일 미국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읽힌 건, 자격지심이었을까? 그러면서 문득, ‘애국심이 안 생길 수 없겠군’이라는 시샘이 들었다.

그들의 독립기념일 축제가 부러웠다. 불꽃놀이 외에도 각종 퍼레이드, 무료 기념공연, 매년 독립기념일에 열리는 뉴욕의 햄버거 빨리 먹기 대회까지. 축제를 즐기면서도 애국심을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는….

철부지 시절, “하필이면 여름방학 때 해방이 되었느냐”고 투덜대며, 방학에도 학교에 나가 들어야 하는 지루한 교장선생님 연설로 기억되는 8·15 광복절. 대통령이 매년 뭔가 구상을 내놓아야 하는 ‘8·15’.


일제 치하의 피맺힌 설움이 서린 우리의 독립기념일이, 이제 200년 지나 선조들을 편한 마음으로 기릴 수 있는 미국의 독립기념일과 같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광복절도 60년이 지났다. 이젠 ‘일동 묵념’ 식의 애국심을 강요당하는 관제의 옷을 벗고, 좀더 편안한 축제로 즐겨도 순국선열들이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

사족. 다음날 아침 9시,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와 전날 축제의 찌꺼기들을 다함께 치웠다. 동네 ‘폭죽 아저씨’는 매년 자신의 비용(최소 1000달러가 넘는다)으로 이 행사를 해왔다. 그는 “단지 이웃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애국자다.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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