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6.24 17:53
수정 : 2010.06.24 17:53
|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
“한국이 어떻게 해야 중국이 한반도 통일에 동의할 수 있을까?”
최근 베이징에서 중국, 미국, 일본 학자들과 만나 한반도 통일 문제를 고민한 한국의 한 저명한 학자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는 미국과 일본의 정책연구소에서는 북한에 급변사태가 벌어지면 중국이 북한을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들도 나오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5년 안에 한반도가 중요한 변화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한국은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있어 민족의 운명이 큰 위기에 처할까 걱정된다”고 했다.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시킨 6·25 한국전쟁 60돌을 맞은 오늘 우리 사회에서 통일에 대한 방향감각 상실증은 점점 심해지는 듯하다. 한국은 천안함 침몰 이후 북한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삐라를 날려보내느라 바쁘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고 한-미 정상회담에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연기하는 문제도 논의하겠다며 미국과의 관계에 모든 것을 거는 태도를 보인다.
한국이 미국을 향해 급격히 다가서는 동안, 보수진영에서는 중국에 ‘자기 이익만 따지는 고집불통’이라는 이미지를 덮어씌우고 있다. 천안함 침몰 이후 한국은 스스로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대진표를 짰고, ‘한-미 공조’를 과시하며 중국이 한국 편을 들도록 압박해 동북아의 전략적 판을 흔들려 했다. 하지만 중국은 ‘재판관’이 돼 한국 편을 들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6·25전쟁에 대해서도 계속 중국이 어느 편인지를 따져 묻는다. 중국 역사교과서가 북한의 남침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조선내전이 폭발한 뒤 미국이 38선을 넘어 압록강에 이르자 북한의 요청으로 인민지원군을 파병해 미국 침략자에 맞서 싸웠다”는 애매한 서술을 하고 있는 데 신경질적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6·25전쟁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느리긴 하지만 꾸준히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한국의 북침설에 근거를 뒀지만 이제 남침인지 북침인지를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는 것도 변화다. 전통적 ‘항미원조전쟁’(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틀을 더는 고수할 수 없지만, 북한의 반발도 고려해야 하는 고민이 읽힌다. 하지만 일반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난 전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관영 <환구시보>는 ‘북한 김일성 주석의 남침계획을 소련의 스탈린이 승인하면서 6·25전쟁이 일어났다’는 선즈화 화둥사범대 교수의 연구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이 어떤 전략적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한반도 문제나 통일 문제에 대한 중국의 태도도 함수관계를 보이며 변하게 될 것이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전통적 혈맹관계의 틀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중국 지도부는 북한의 현실과 핵문제, 북-중 경제협력과 관련해 미래를 내다보는 냉정한 전략적 계산에서 접근할 뿐이다. 중국은 ‘김정일 이후의 북한’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한 중국 학자는 최근 사석에서 “김정은이 세습에 성공한다 해도 실질적으로 김일성, 김정일처럼 실권을 쥔 강력한 지도자가 될 수는 없으므로, 북한 내에 개혁개방을 실현할 수 있는 세력을 준비시키는 꾸준한 노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중국이 북한의 관리, 학자, 유학생들을 정기적으로 받아들여 교육시키고 있다고 했다.
정작 수백만의 목숨을 잃은 참혹한 전쟁을 겪은 우리는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틀에 갇혀 영원히 앞이 아닌 뒤를 보면서 쳇바퀴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6·25전쟁 60돌을 앞두고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이 보여준 것은 이제 그만 쳇바퀴에서 벗어나 평화와 미래에 대해 성찰하자는 주문이었다. 우리 정부는 어떤 대답을 하고 있는가.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