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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22 20:57 수정 : 2010.03.22 20:57

권태호 특파원





지난 19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보험 개혁안 ‘마지막’ 타운홀 미팅이 열린 버지니아주 조지메이슨대학에 갔다. 8500여명이 몰린 강당에서 오바마는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역사를 바꾸겠다”며 사자후를 내질렀다. 지지자들로 가득 찬 그곳에선 갈채와 환호가 쏟아졌다. 이날 풍경만 보면 미국인 모두가 의보개혁안을 지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지난주 <엔비시>(NBC)와 <월스트리트 저널> 조사에서 미국민의 36%만 개혁안을 지지했다. 19일 갤럽 조사에선 개혁안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 미국인이 28%에 그쳤다.

개혁안을 보면 볼수록 미국인들이 환호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개혁안의 최대 목표는 현재 보험이 없는 3200만명에게 보험 혜택을 주자는 거다. 제로섬 게임으로 보면, 나머지 3억명의 미국인들이 조금씩 돈 걷어 병원비를 대신 내주는 거다.

개혁안은 의보개혁 재정부담을 향후 10년간 9400억달러로 봤다. 세금을 올려야 한다. 고소득층의 반대는 당연하다. 중산층은 보험료가 더 오를까 걱정한다. 지금은 심각한 병력이 있는 사람들의 보험 가입이 쉽지 않다. 이들에게 보험 혜택을 주자는 데 반대하긴 힘들다. 그러나 이들이 같은 조건으로 가입하면 기존 가입자의 보험료는 올라간다. 또 직원 50명 이상 회사는 이제 직원들의 의료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인건비 부담 때문에 직원 채용을 꺼리거나 감원할 수 있다. 또 65살 이상 고령자들에 대한 무상 공공의료 보장제도인 메디케어에서 의약품 구입 비용이 제외된다.

그렇다면 그동안 무보험으로 지내다 보험 혜택을 받게 되는 3200만명은 행복할까? 이들 중 절반인 1600만명은 의료비가 전혀 안 드는 메디케이드(저소득층 무상 공공의료)에 가입된다. 차상위 계층이다. 이들이 개혁안의 최대 수혜자다. 그러나 이들보다 사정이 조금 나은 나머지 1600만 무보험자들은 개인 부담으로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안 그러면 연간 695달러의 벌금을 문다. 또 메디케이드 가입자가 늘면 서비스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3500만명의 기존 메디케이드 수혜자들은 불평할 수 있다. 정부는 비용절감을 위해 메디케이드 수가를 줄이려 하고, 일부 의사들은 돈 안 되는 메디케이드 환자를 안 받으려 한다.

따져보면 결국 미국민들의 5%(1600만명)만이 개혁안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개혁안 지지율이 36%나 되는 게 신기하다. 유럽과 자주 비교되는 미국이지만, ‘그래도 선진국’이라는 생각이다.

이러니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질 것이란 판단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특히 의보개혁의 효과는 10년이나 지난 뒤에야 서서히 나타나지만, 세금·보험료·기존복지삭감·고용불안은 당장 표가 난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왜 의보개혁안에 정치적 목숨을 걸었을까? 오바마는 이걸(의보개혁안) 하려고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는 시카고 빈민가에서 오랜 봉사활동을 했다. 거기에서 그는 보험이 없어 애태우는 어려운 이들과 마주했을 것이다. 대선에 나서고서야 정책 만들어 공약 내놓는 경우와는 신념의 깊이가 다르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좋은 뜻’이 늘 ‘좋은 정치적 결과’를 낳진 않는다. ‘언젠간 오바마가 옳았다는 걸 다 알리라’는 개인적 믿음이 있지만, 그 ‘언젠간’이 오바마 임기 안에 올진, 자신이 없다.

오바마가 조지메이슨대에서 연설을 끝내고 돌아갈 때, 자동차가 나오길 기다리던 인파들은 폴리스라인 뒤에서 환호했고, 오바마는 손 흔들어 답례했다.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가진 정치인은 행복하다. 진정성이 이를 가능하게 했으리라.

권태호 특파원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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