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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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광장에 처음 간 것은 16년 전이었다. 사진 속에서만 보던 중국 역사의 무대, 무겁게만 느껴지던 그곳에서 시민들이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하고 연을 날리는 모습이 편안하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 뒤로 중국은 훨씬 발전하고 힘이 세졌지만, 천안문광장에 갈 때마다 처음에 느꼈던 편안함 대신 삼엄함이 무겁게 짓누른다. 검문하는 이들의 시선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순찰을 도는 경찰차는 늘어만 간다. 미국발 금융위기 뒤 중국이 떠오르면서, 세계는 중국이 오만해졌다고 난리다. 그러나 중국의 “오만함” 뒤로 불안도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가 개막한 인민대회당에서 2시간 넘게 원자바오 총리의 정부 업무보고를 듣는 동안 중국 지도자들이 느끼는 불안과 절박함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경제위기에서 가장 먼저 탈출하고 8.7%의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화려한 성적표 뒤에 감춰진 중국의 모순을 최고지도자들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리라. 미국이 거대한 빚더미와 실업률에 짓눌리는 동안 중국은 아무런 상처도 고통도 없이 위기를 넘긴 듯 보였다. 하지만 아무런 희생도 없이 정부가 거액을 쏟아부어 거품을 키워 위기를 넘기는 방식은 중국 경제·사회의 고질병들을 더욱 악화시켰다. 경제의 구조조정은 늦춰지고 과잉투자와 부동산 거품은 커졌다. 지방정부들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가난한 이들의 삶의 터전을 강제철거한 뒤 확보한 토지를 부동산 개발회사에 비싼 값에 넘겨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먼저 빚독촉장이 날아들고 있다. 중앙정부의 재정적자는 여전히 양호하지만, 지방정부들이 막대한 빚을 끌어다 개발사업을 벌인 결과 ‘감춰진 개발 대출’이 내년에 공공부채를 국내총생산(GDP)의 96%까지 치솟게 해 중국은 물론 세계경제에 또다른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중국 언론들도 각 지방정부가 6조~8조위안의 부채를 지고 있다고 전한다. 지방정부들이 보여주는 초호화판의 개발 프로젝트 홍보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몇년 전 두바이에서 보았던 세계 최대 인공섬 팜 주메이라의 홍보 장면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일까? 문제는 ‘청구서’에서 그치지 않는다. 광대한 중국 땅 곳곳을 파헤치며 벌어지고 있는 부동산 개발사업으로 강제로 쫓겨나는 철거민들, 그림의 떡이 되어가는 부동산 가격 폭등을 바라보는 백성들의 분노와 절망도 커지고 있다. 사회과학원의 위젠룽 교수는 최근 사회불안이 악화되는 이유는 착취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부패한 관리들이 범죄조직과 결탁해 땅을 장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기를 2년 반 남겨놓은 현재의 지도자들도 어떻게 부풀어오르는 모순을 해결하고 업적을 남겨야 할지 마음이 바빠진 것 같다. 지도자들은 전인대를 통해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농민공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농촌의 사회보장 혜택을 강화하고 부동산 폭등을 막고 정치 민주화를 추진하겠다는 광대한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재산세를 도입해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고 부자들의 돈을 받아 가난한 이들에게 이전하는 조처를 실제로 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덩샤오핑이 지휘한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합법성은 성장률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최근 “국가의 부의 파이를 키우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지만 부를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은 정부의 양심”이라고 말했다. 파이를 계속 키우면서도 사회적 불만의 범람을 막아야 하는 중국 정부의 시간과의 경쟁이 숨가빠졌다. 박민희 특파원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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