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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2.08 19:36 수정 : 2010.02.08 19:37

권태호 특파원

처음 도요타 리콜 소식을 들었을 때, ‘며칠 가다 말겠지’ 생각했다. 도요타에 대한 ‘신뢰’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경제부에서 자동차업계를 출입하면서 수많은 자동차를 시승해 봤는데, 개인적으로 최고의 차로 꼽은 게 ‘렉서스 엘에스(LS) 430’이었다. 처음 차를 탔을 때 너무 조용해 ‘시동이 안 걸렸나’ 하고 다시 키를 돌리곤 했다. 리콜 사태 이전까지 렉서스뿐 아니라 중형차 캠리, 소형차 코롤라, 소형 4륜구동 래브4, 미니밴 시에나 등 거의 모든 차종에서 도요타가 판매 1위였다. 영화 <그랜토리노>에서 쇠락하는 노년을 상징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1972년형 포드 그랜토리노의 대척점으로 등장한, 아들이 모는 차도 도요타의 스포츠실용차 ‘랜드크루저’였다. 도요타에 대한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도요타가 아닌, 도요타에 가속페달을 납품하는 미국 부품회사(CTS)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뒤이어 결함이 발견된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는 일본에서도 생산됐다.

최근 도요타 사태를 지켜보노라면 국수주의를 연상시키는 미국 언론의 집중포화가 인상적이다. 늘 한국에는 ‘외국 기업에 적대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미국이. <워싱턴 포스트>는 결함 부위 설명에만 한 면을 할애했고, <시엔엔>(CNN)은 가속페달 결함으로 숨진 일가족의 마지막 911 전화통화 장면을 수도 없이 내보낸다. 역시 사망사고로 불거졌던 2000년 포드 익스플로러의 타이어 리콜 때도 이렇진 않았다. 이는 제너럴모터스(GM)의 몰락으로 판매 1위로 등극한 도요타가 치러야 하는 ‘챔피언의 독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도요타는 이전부터 소소한 문제들이 있었다. ‘남이 타는 도요타’는 ‘10년 동안 아무 문제가 없다’는데, ‘내가 타는 도요타’는 성가신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사람들은 다들 ‘도요타니까’ 하며 믿었다. 기자가 지난해 9월에 산 중고차 도요타 시에나도 처음부터 문제가 많아 두 달 이상 수리점에 묶여 있다. 1만500달러에 샀는데, 수리비가 4000달러 들었다. 그래도 이를 ‘도요타의 문제’가 아닌, ‘내 차의 문제’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지금까지 도요타의 상징은 최고품질, 평생고용, 장인정신이었다. 50년 무분규, 노조가 앞장선 임금동결은 한국 언론의 단골 소재다. 직원들이 업무가 끝나도 남아 분반토의를 통해 품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카이젠’(개선)은 도요타에서만 볼 수 있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유명했던 자동차 생산공정에서 한 곳에 문제점이 발생하면 전 라인이 멈춘다. 미국 노동자들은 대개 한 분야에서만 일해 담당자가 아니면 손을 못 댄다. 그러나 도요타는 직원교육을 통해 결함이 발생해도 현장에서 곧바로 고쳐나간다. 45초 만에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 그 속도는 세계 1위다. 삼성자동차 경영진이 삼성차 출범 전에 닛산자동차에서 생산현장 연수를 받았는데 생산라인이 너무 빨리 돌아가 울면서 작업했다는 일화가 있는데, 도요타의 생산속도는 그보다 더 빠르다.

결국 살인적인 육체적·정신적 노동강도가 ‘도요타 품질’을 뒷받침했다고 보면 된다. 도요타에서 과로사, 자살, 우울증이 지적된 건 이번 리콜 사태 이전부터였다. 또 원가절감 차원에서 비정규직이 대폭 늘어 이제 30%가 넘는다. ‘평생고용+장인정신=최고품질’의 공식에서 한 축이 무너진 것이다.

도요타가 다시 가속페달을 밟을 날은 더 강도 높은 효율성과 원가절감이라는 ‘제2의 린(lean) 생산방식’을 통해서가 아닌, 좀더 인간적인 모습이었던 ‘도요타의 기본’으로 돌아간 뒤가 아닐까 싶다.

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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