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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16 19:20 수정 : 2009.11.17 10:21

권태호 특파원

지난 11월11일은 미국에선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이었다.

여론조사 기관인 라스무센이 재향군인의 날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의 81%가 군에 대한 호감을 표시했다. 비호감 응답자는 9%에 그쳤다. 또 응답자의 61%는 재향군인들이 주택이나 직장을 얻는 데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다소 놀랐다. 우리와는 많이 다른 군에 대한 인식에. 최근 아프가니스탄 반전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지만 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군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 똑같은 여론조사를 한국에서 했다면 어떠했을까? 한국의 한 전직 장성이 미군 장성에게 “미군은 어떻게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됐느냐?”고 물었을 때, 미군 장성은 세가지를 답했다. 군이 미국의 독립에 기여했고, 군 장성 중 불미스런 일로 스캔들을 일으킨 이가 없고, 군이 미국을 보호한다는 생각이 일반인들 사이에 강하다는 것이다.

우리 군은 불철주야 휴전선을 지키고 있지만, 독립에 기여한 바는 없고, 5·16, 12·12, 그리고 5·18 등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도 많이 줬다. 한국군 전 장성은 말했다. “우리가 감수해야 할 업보”라고. 도올 김용옥이 한때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군은 동족을 지키기 위해 이민족과 싸운 역사가 없다.”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주요 언론은 수시로 미군 사망자 증가 수치를 그래프를 통해 보여주거나, 때론 ‘아프간에서 숨진 미군들’이라는 제목 아래 숨진 장병들의 개인사진을 몇 면에 걸쳐 싣는다. 성조기를 두른 관 앞에 선 전사자의 다섯살배기 아들 사진이 신문 1면을 장식하기도 한다. 이는 재향군인과 그 가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포트후드 총기난사 사건 이후에는 전쟁 복귀장병들의 정신적 상처에 대한 관심도 깊어지고 있다.

미국은 이미 재향군인에 대해 보상금, 연금, 주택융자 지급보증, 치료 등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 단순비교는 힘들지만, 한국에서 논란이 됐던 군 복무자 가산점 제도도 연방정부 직원 채용 때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베테랑’과 우리 ‘재향군인’은 어감부터 많이 다르다. 손목에 갈고리를 하고 물건을 강매하는 무서운 아저씨에 대한 어린 시절 기억 또는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보수집회를 여는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의 그림부터 먼저 떠오른다. 나라 위해 몸 바쳤는데 변변한 보상은 고사하고 치료도 제대로 못 받았던,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또다른 업보’는 그들 몫이었다. 어릴 때 <람보> 등 미국의 베트남전 영화를 보면 잘 이해하지 못했던 대목이 하나 있었다. 참전군인들이 전쟁에서 사람을 해친 것에 대해 몇 년이 지난 뒤에도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장면이 낯설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 양심에 둔감한 것도 아니고, 우리 베트남전 참전군인 가운데 그런 이들이 왜 없었겠는가? 그때 우리나라에서 정신적 충격 운운은 ‘사치’였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재향군인들은 대체로 보수적이고, 공화당 지지자가 많다. 그러나 미국 향군단체들은 정치적 목적을 금지하는 강령을 채택해 우리처럼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집회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미국의 대통령 후보자들은 선거 때마다 향군단체를 찾고, 미국인들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미국 ‘재향군인의 날’에 한국의 재향군인을 생각해 본다.


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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