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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05 19:19 수정 : 2009.10.05 19:19

권태호 특파원

워싱턴에 와 자동차를 사야 했다. 주변 사람들의 한결같은 권유는 “무조건 일본 차를 사라”였다. 그러고 보니 주재원들이나 교민들의 차는 다 똑같았다. 대부분 승용차는 시빅(혼다), 캠리(도요타), 미니밴은 오디세이(혼다), 시에나(도요타)였다. 그런데 7만~8만마일을 달린 중고 미니밴 가격이, 일본 차는 1만2000달러, 미국 차는 6000달러이니, 싼 맛에 미국 차에 한 번쯤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일본 차를 사라”는 게 또 한 번의 충고였다. 미국 차는 고장이 잘 나고, 사소한 곳에 고장이 나도 차를 다 뜯어야 할 때가 많아 수리비도 많이 들고, 되팔 때 고생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제너럴모터스(GM)의 새턴(Saturn) 브랜드가 매각협상 결렬로 폐쇄가 결정됐다. 이제 지엠 브랜드가 사라지고, 공장 문을 닫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건 뉴스도 아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만 해도 지엠은 대단했다. 경제부에서 자동차 산업을 담당할 때,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가면, 외국 자동차업체들이 손바닥만한 쇼룸에 자동차 몇 대만을 갖다 놓을 때, 지엠은 한 층을 다 사용했다. ‘빅3’ 중에서도 지엠은 또 달랐다. 지엠은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전세계 각국 기자 수백명을 초청했는데, 기자들을 지역별로 나눠 세미나에 참석시켰다. 지엠의 100년 역사를 가르치고(?), 지엠이 얼마나 대단한 회사인지를 설명했다. 76층짜리 빌딩을 필두로 5개의 초고층빌딩이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지엠 본사인 르네상스 센터, 웬만한 자동차공장보다 더 큰 디자인센터 등을 견학시켰다. 그때는 도요타나 메르세데스벤츠도 지엠 앞에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다.

전성 시절, 지엠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뒤꼬리(테일 게이트)가 길게 뻗은 분홍색 캐딜락을 타고, 닉슨 대통령이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지엠의 캐딜락 엘도라도를 선물로 건네던 때였다.

지금 지엠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19%다. 지엠의 몰락 이유야 수백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그 근저에는 지엠의 ‘오만’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업의 자부심이 너무 강하면 생산자 눈높이에 소비자를 맞추려 하게 된다. 지엠은 쇠락하던 2006년 텔레비전 광고 시리즈물로 ‘덴 어게인, 나우 어게인’(Then again, Now again)을 내보냈다. 광고는 1960~70년대 지엠 전성기의 흑백 영상을 틀었다.

최근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 앤 월드리포트>는 도요타자동차 최고경영자인 도요다 아키오가 매출 감소로 인한 주가 하락에 대해 주주들에게 사과했다는 것을 언급하며, ‘지엠은 도요타의 겸손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나’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지엠은 납세자로부터 510억달러를 받았고, 아마 못 갚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엠은 주주 손실, 공공기금 사용 등에 대해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겸손’은 적어도 문제를 알고 있고, 책임지겠다는 뜻을 보여준다. 지엠은 아직도 경영진이 (지엠에 대한) 회의론자들을 확신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고 보도했다. 마지막 문장은 “허세를 버려라. 차라리 불안해하는 것이 낫겠다”였다. 지엠에 대한 미국민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고객이 이러할진대, 지엠은 좀더 힘든 여정을 걸을 것 같다. 우리 기업들이 배워야 할 타산지석은 아닐까? 국민을 고객으로 둔 정치권도.

권태호 특파원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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