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20.01.08 16:14 수정 : 2020.01.09 02:06

2000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황야지대 도로에서 운전자가 비비원숭이 한 마리를 치어 죽인 뒤 계속 주행한 일이 있었다. 운전자는 사흘 뒤 같은 길로 돌아오다가 뜻밖의 습격을 받았다. 그의 차를 알아본 비비원숭이 한 마리가 소리를 지르더니 수많은 원숭이 떼가 몰려들어 돌을 던졌다. 유리창은 박살났고 혼비백산한 운전자는 가까스로 벗어났다. 유인원 연구자들이 말하는 영장류 공통의 보복 체계 사례다. 복수는 인간 유전자에 깊이 새겨진 본능이다.

복수는 인간이 비합리적 존재라는 걸 증명하는 증거다. 복수로 얻는 실익은 거의 없다. 오히려 복수는 그 실행자를 추가 피해와 위험에 빠뜨린다. 반복된 심리 실험에서 사람들은 기대를 저버렸거나 규칙을 어긴 사람을 응징하기 위해 자신의 피해도 감수하는 강한 보복 성향을 드러냈다. 전세계 살인의 20%, 학교 총기사고의 60%가 복수 때문이다. 각 종교는 원수를 사랑하라며 용서를 가르쳐왔지만 우리는 복수에 열광한다. 역사와 문학작품, 드라마와 영화에서 복수는 가장 인기있는 주제다.

복수한다고 살해당한 가족이나 박살난 행복이 돌아오지 않지만 사람은 복수를 가치롭게 여긴다. 니체는 “원수가 훼손한 명예는 복수로 되찾을 수 있다. 복수는 내가 원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복수 충동은 단기적으로는 피해를 가져오지만 적이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게 만들어 장기적으로 종족 보존을 돕는다는 게 진화생물학의 설명이다. 현대 뇌과학은 복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뇌에 쾌락전달물질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걸 밝혀냈다.

달콤한 쾌감의 복수는 ‘눈에는 눈’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류의 스승들이 보복으로는 무한한 파멸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고 가르친 이유다. 인류는 개인 간 보복을 금지하고 법에 의한 처벌을 통해 야생의 보복 본능을 벗어났다. 하지만 국가 안에서 작동하던 보복 금지도 국가 사이엔 작동하기 어렵다. 무슬림은 이슬람 사회를 구현하고 지키기 위한 투쟁을 지하드로 부르며 이를 위한 보복을 최고의 순교로 여긴다. “때린 놈은 다릴 못 뻗고 잔다”는 속담은 인간의 보복 성향이 얼마나 뿌리깊은지 말해준다. 잇속 계산 능하다는 트럼프가 가장 타산 안 맞는 거래에 뛰어들었다.

구본권 ㅣ 미래팀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유레카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