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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1 16:58 수정 : 2020.01.02 02:33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 텅 빈 공간, 짙은 어둠, 심연이라고도 했다. 그 혼돈에서 하늘과 땅을 가르고, 해와 달을 만들고, 사람과 동물을 지어낸 이야기가 창조 설화다. 인간의 지식 너머에 있는 태초의 세계는 신화가 말해준다. 기원전 1500년께부터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말살되기까지 3천년 동안 융성한 문명을 꽃피웠던 메소아메리카(중미) 신화도 그렇다. 오늘날 멕시코·과테말라·온두라스 지역을 중심으로 올멕, 마야, 아즈텍, 미스텍, 사포텍, 잉카 문명 등이 명멸한 곳이다. ‘신이 되는 곳’, ‘신의 탄생지’란 뜻의 테오티우아칸에는 ‘다섯개의 태양’ 신화가 있다.

“첫번째 태양은 물의 태양인데 홍수에 떠내려갔다. 세상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물고기로 변했다. 두번째 태양은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다. 세번째 태양은 비처럼 쏟아지는 불꽃에 휩쓸렸고, 사람들은 불타 죽었다. 네번째 태양은 ‘바람의 태양’으로 폭풍우에 날아가버렸다. 사람들은 원숭이로 변해 뿔뿔이 흩어졌다. 시름에 잠긴 신들이 테오티우아칸에서 회의를 열었다. “누가 태양이 되어 새벽을 가져오겠습니까?” 늠름하고 잘생긴 카라콜레스가 앞으로 나섰다. (…)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푸룰렌토를 쳐다보았다. 가장 왜소하고 못생긴 신이었다. 카라콜레스와 푸룰렌토는 각자 자신의 언덕으로 올라갔는데, 지금의 태양 피라미드와 달 피라미드다.”(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불의 기억>)

아즈텍 신화에서 태양의 순서와 신들의 이름은 전승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이야기는 같다. 신들은 장작을 쌓아 불을 피우고 두 신을 불렀다. 주저 없이 불에 뛰어든 푸룰렌토(나나우아틀)는 곧 벌겋게 달아올라 하늘로 치솟았다. 그렇게 다섯번째이자 지금의 태양이 됐다. 짐짓 큰소리를 쳤던 카라콜레스(테쿠시스테아틀)는 머뭇거리다가 신들에게 불 속으로 떠밀렸고, 한참 뒤에야 하늘로 솟아올랐다. 화가 난 신들이 토끼로 뺨을 후려치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고, 으스대던 카라콜레스는 달이 됐다. 달의 반점들은 그때 맞아서 생긴 흉터란다.

2020년 새해가 밝았다. 테오티우아칸 신화에 따르면 ‘다섯번째 태양’이 빛나는 지금은 제5시대다. 태양이야 날마다 뜨고 지는 것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새해를 새로운 다짐의 계기로 삼는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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