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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5 17:36 수정 : 2019.12.30 12:22

송가인에서 유산슬까지, 올해 국내 대중문화계의 키워드 중 하나는 트로트다. ‘목포의 눈물’ ‘눈물 젖은 두만강’ 같은 ‘명곡’이 쏟아진 1930~40년대엔 민요적 전통 색채가 강한 ‘신민요’와 대비돼 ‘유행소곡’ ‘유행가’로 불리던, 당시 젊은 세대의 최신 트렌드 음악이었다.(이영미 <한국대중가요사>) ‘트로트’란 용어가 정착된 건 1960년대. 미국에서 1910년대 유행한 네박자의 사교댄스곡인 ‘폭스 트롯’이 어원인데, 일본에서 대중가요 엔카를 이른바 ‘도로토’ 춤곡으로 썼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때는 비하 투의 ‘뽕짝’으로, 한때는 ‘전통가요’로 불렸던 트로트가 정치·사회적 이유로 겪은 수난은 적잖다. 100만장 넘게 팔렸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1965년 느닷없이 ‘왜색’이라며 금지된 것은 거센 한-일 수교 반대 여론 속에 박정희 정권이 자신의 ‘민족주의’를 보여주기 위해 트로트를 희생양으로 삼은 대표적 사례다. 전두환 정권기인 1980년대 중반엔 일본 대중문화 개방 논란을 배경으로 음악인, 평론가, 사회학자까지 참여한 ‘뽕짝’ 논쟁이 월간지와 일간지를 넘나들며 격렬하게 이어졌다. “뽕짝은 게다짝과 함께 짐짝에 묶어서 제고장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순리”라던 한 기고(<동아일보> 1984년 5월17일치)는 당시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사실 일본의 영향은 한국의 근대 문물 대부분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게다. 게다가 트로트는 100년 가까운 세월을 거치며 우리 노래로 뿌리내렸다. 1980년대 후반 주현미를 기점으로는 5음계 단조풍이 거의 사라지며, 탄식과 눈물보다는 즐거움과 흥의 노래가 됐다. 하지만 아무리 신세대 트로트 가수가 나와도 다른 ‘세련된’ 장르에 비해 ‘나이 든 사람들이나 좋아하는 촌스러운 음악’이라는 인식은 여전했다.

그런 인식이 깨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올해는 좀 특별하다. 상반기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의 인기도 컸지만, 유재석과 김태호 피디의 ‘유산슬’ 프로젝트는 지상파 3사는 물론 유튜브까지 점령하며 젊은층과 트로트를 외면했던 이들까지 끌어들였다. ‘장인’ 박토벤, 정차르트 등의 인기는 트로트 생태계를 재조명하며 편견을 바꿔놨다. 이영미 문화평론가는 “직설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가사가 유튜브 시대와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다”고 짚었다. 트로트의 재발견은 어디까지일까.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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