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1.29 17:09 수정 : 2019.01.29 23:19

한해 세계에서 1천억개 이상 팔린다는 인스턴트 라면의 효시는 일본이지만, 꽃핀 곳은 한국이다. 세계라면협회 자료를 보면, 2017년 한국인 1인당 연간 소비량은 73.7개로 2위 베트남(53.5개)과 압도적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라면 원조는 고 전중윤 명예회장이 세운 삼양식품공업의 1963년 ‘즉석 삼양라-면’이다. 효시인 닛신식품으로부터 거절당한 뒤 경쟁사 묘조식품의 무상 기술원조를 끌어냈다. 초기엔 ‘면’이란 이름 탓에 섬유로 만든 제품으로 오해받는 등 별 인기가 없었지만, 박정희 정부의 분식 장려 정책과 맞아떨어지면서 전성기를 열었다. 국내 1위는 물론 69년 최초로 베트남에 라면을 수출하는 등 수출기업으로 발돋움했다. 72년엔 재계 순위 23위까지 올랐고, 전 명예회장은 금탑·은탑·동탑 훈장을 모두 받은 첫 경영인이 됐다. 하지만 너구리, 안성탕면 등 신제품 개발에 진력한 농심의 맹추격이 본격화한 80년대 들어 전성기는 저물기 시작했다. 85년 점유율 1위를 빼앗겼고 89년 이른바 공업용 우지(쇠기름) 파동에 결정타를 맞았다.

익명 투서에서 시작된 검찰 수사는 두고두고 뒷말을 낳았다. 검찰은 미국산 2·3등급 비식용 우지를 쓴 삼양식품 등 완제품의 유무해 여부를 알 순 없지만 유해 소지가 있다는 주장을 집요하게 폈다. 8년 뒤 대법원의 무죄 판단이 나왔지만 점유율은 곤두박질친 다음이었다. 이 사건 당시 검찰총장이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016년 농심의 법률고문으로 가면서 불거진 ‘보은’ 논란은 삼양식품에 ‘억울하게 당한 기업’ 이미지를 굳혀줬다.

부활이 요원해 보이던 삼양식품을 살려낸 건 그래도 라면이었다. 2012년 나온 불닭볶음면은 에스엔에스에 요리법 경쟁이 번지며 2016년부터 메가히트작이 된 특이한 경우다. 이에 힘입어 삼양식품은 지난해엔 최고 실적이 예상됐다. 하지만 전문경영인 대신 회사가 안정될 때만 되면 경영 전면에 등장하는 창업주 일가는 늘 ‘리스크’로 꼽혀왔다. 결국 창업주의 장남인 전인장 회장이 26일 9년간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회삿돈 5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법정구속됐다. 아내 김정수 사장은 집행유예를 받았다. 라면 500만개는 팔아야 할 액수다. 이 부부가 재판을 받는 일곱달여 사이에 삼양식품의 시가총액은 5천억원가량 날아갔다고 한다. 한국 기업의 오너리스크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존경받는 전통의 기업이 드물다는 현실은 씁쓸하다. 라면은 죄가 없다.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유레카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