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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10 18:46 수정 : 2014.02.10 19:55

권태선 편집인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에 이어 정부가 ‘통일시대 개막’까지 들고나오는 것을 보면 통일이 문턱 앞에 와 있는 느낌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일진대, 올해를 통일시대의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환영하면 환영했지,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의 보고나 움직임은 영 미덥지가 않다. ‘어떤’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서다. 그러다 보니 항간에는 대통령선거에서 써먹고 버린 경제민주화론처럼 통일론도 지방선거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없지 않다.

우리 역사에서 통일 문제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 일은 비일비재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7·4 공동성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7·4 성명이 발표된 날의 감격이 그 뒤 3개월 만에 뭉개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972년 7월4일 수업중 갑자기 교내방송이 나왔다. 남북이 ‘외세의 개입 없는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이었다. 급우들은 당장 통일이 되는 양 기뻐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남에서는 10월유신을 통해 박정희 영구집권체제가 들어섰고, 북에서도 김일성 1인지배체제가 강화됐다. 7·4 성명은 독재자들의 권력 강화를 위한 눈가림용 도구로 끝났다.

물론 40여년 전과 지금의 상황은 엄청나게 다르다. 남북한의 국력 차이가 현격해졌고 북한의 불안정성이 심화됐다. 장성택 처형과 같은 비상식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3대 세습을 통해 등장한 어린 지도자가 김일성이나 김정일처럼 상황 전체를 조감하면서 판단하는 능력을 아직 제대로 못 갖춘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4년이 통일의 분수령이라고 정부가 말하는 배경에는 이런 북한의 불안정성이 머지않아 급변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한 판단은 엇갈리더라도, 정부는 이에 대비할 책임이 있다. 문제는 어떻게 대비하는가다.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은 민족의 장래와 한반도 남과 북 주민들의 안위다. 급변사태는 남북의 주민들을 북한의 핵을 비롯한 무력충돌의 위험에 노출시킬 뿐 아니라, 그 결과 통일이 되더라도 엄청나게 많은 비용을 요구한다. 2010년 한국개발연구원은 북한 급변사태로 인한 통일비용을 30년간 총 2525조원으로 추정했는데 이는 점진적 통일의 경우에 드는 380조원의 7배나 되는 수치다. 북한의 불안정성이 커질수록, 남쪽이 그를 부추기는 대신 안정화시키는 데 진력을 다해 급변사태를 막고 점진적 변화의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정부의 접근 방식엔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통일의 상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점이다. 상대를 흡수하려 들면서 그 내부의 변화를 목표로 내걸 경우, 그 변화 요구에 응할 상대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체제에 대한 보장이 있어야 북도 안심하고 변화를 도모할 수 있고, 남북 동질성 회복을 위한 교류와 협력도 늘어날 수 있다. 당장 시급한 것은 어렵사리 합의한 이산가족 상봉을 차질 없이 치르는 일이다. 굳이 키리졸브 훈련 기간에 상봉 일자를 잡아 논란을 빚는 것은 아쉽지만, 남북 당국은 지혜롭게 만남의 끈은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것은 통일 대박론이 북한의 내부식민지화를 겨냥하는 듯한 점이다. 북한 주민에게 이밥에 고깃국만 주면 된다는 발상은 동포를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다. 통일 후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동·서독 주민들 사이의 심리적 간극이 여전하고 새터민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제3국행을 희망하는 현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독일 통일 당시 서독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는 통일 과정에서 “억지로 하나로 합쳐져서는 안 되고, 제대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도 ‘제대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통일 과정이 단순히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된 한반도가 매력있는 공동체로 거듭나는 과정이 돼야 한다. 통일 대박론이 지방선거용 통일론 대박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와 우리 민족의 미래에 대한 성찰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권태선 편집인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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