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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3 18:00 수정 : 2019.12.04 02:37

최원형 ㅣ 사회정책팀 기자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 더 정확히 말해 ‘대학 진학’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계층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다리’였다. 국민 대부분이 대체로 평등하게 가난했고, 고등교육의 이수 여부가 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약속했던 과거에는, 교육을 통해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데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거치며 양극화가 심화된 뒤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이젠 교육이 사다리 구실을 하기는커녕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핵심 수단이 됐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계층이동의 사다리’로서 교육의 기능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 역시 ‘교육의 희망사다리 복원’을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누구든 자기 실력에 따른 성취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 등을 걷어내고 ‘공정한 경쟁’만 보장한다면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다는 식의 능력주의 담론이 이를 떠받치는 시대정신으로 대두했다.

반면 교육을 계층이동의 사다리로 보는 인식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실제로 교육이 어떻게 계층이동 사다리로 구실할 수 있을지 따지고 들어가면 난감한 대목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일단 과거 “소 팔아 자식 대학 보냈던” 시절의 ‘대학 진학’ 사다리는 오늘날 별다른 쓸모가 없어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2018년 기준으로 69.6%로 오이시디 평균(44.3%)을 한참 웃돈다. 고등교육 기회가 계층이동을 이끌어낼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얘기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다리는 아마 ‘더 좋은 대학’일 것이다. ‘더 좋은 대학’은 ‘더 좋은 직업’을, ‘더 좋은 직업’은 더 안정적인 지위와 더 큰 경제적 보상을 얻을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고등교육의 기회’라는 보편적 허울을 벗어던지고 특정 대학들을 사다리로 지목하는 순간, ‘계층이동의 사다리’라는 말 자체가 잔인한 농담이 되어버린다. ‘더 좋은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 ‘더 좋은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 등 지위의 위계가 일으키는 격차야말로, 애초 우리로 하여금 사다리를 놓는 문제를 고민하게 만든 불평등의 장본인 아닌가. “계층이동의 사다리로서 교육이라는 관점은 결국 교육을 지난 산업화 시대처럼 지위가 높은 직업과 더 많은 경제적 보상을 획득하는 통로로 인식하는 것”(김두환 덕성여대 교수)일 수 있다.

교육을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는 수단으로만 대하면 또다른 폐해를 부른다.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자원으로서의 교육이 아닌, 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자원으로서의 교육은 ‘과잉 투자’로 치닫기 때문이다. ‘지위재로서의 교육’은 그것이 가져다주는 보상의 크기를 최대화하기 위해 다수에게는 닫히고 소수에게만 열린다. 고등교육의 기회에 대한 열망이 ‘더 좋은 대학’에 대한 욕망으로 날카롭게 다듬어져온 과정은 이런 과잉 투자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속에서 대학 입시 제도는 ‘사회적 닫힘’을 실행하는 ‘배제의 법칙’으로 작동한다. “서울 소재 16개 대학”의 대학 입시 제도를 둘러싼 온갖 논란이 끝내 “그들만의 리그”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근본적으로 낮은 곳과 높은 곳의 격차 자체가 크지 않다면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경제정책이나 노동정책으로 해결해야 할 모순들을 손쉽게 교육에 떠맡기고, 이것을 계층이동의 사다리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다리 담론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비판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circle@hani.co.kr

(※이 칼럼은 논문 ‘교육의 계층이동 사다리 역할론 비판’(김두환, 2017), ‘이제 ‘계층 사다리로서의 교육’ 프레임을 폐기할 때가 되었다’(김정원, 2017), ‘배제의 법칙으로서의 입시제도’(문정주·최율, 2019) 등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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