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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7 18:19 수정 : 2019.11.18 02:37

사진 엠넷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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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 시리즈’ 조작 기사를 접할 때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프로듀스 101>(엠넷·Mnet) 출연을 목표로 연습해오던 한 친구다. 그는 기획사에서 데뷔까지 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고, 다시 연습생 신분으로 돌아갔다. 경연 프로그램은 그가 꿈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잘 지내냐”는 오랜만의 연락에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유는 애써 묻지 않았다. “‘프듀’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꿈이 이뤄질 것 같다”며 송아지 같은 눈을 반짝이던 얼굴이 아른거려서였다.

<엠넷>의 ‘프듀 시리즈’ 조작은 방송사가 아이들의 ‘꿈’을 돈벌이에 이용해왔음이 증명됐다는 점에서 잔인하다. 명색이 경연 프로로 먹고살아온 방송사가 지원자들의 절실함을 한번이라도 떠올려봤다면, 기획사의 접대를 받고 순위를 조작하는 행위를 할 수 있었을까? 그게 아이들에게 어떤 상처로 남을지는 무시한 채 자신들의 배불리기에만 급급해온 방송사의 뻔뻔함에 화가 난다.

돌이켜보면 <엠넷>은 처음부터 그랬다. <엠넷>을 ‘경연 왕국’으로 만들어준 <슈퍼스타케이(K)> 성공의 8할은 ‘악마의 편집’이었다. 실력은 안 되어도 용기 내어 도전한 지원자를 우스꽝스럽게 편집해 온 국민의 놀림거리로 만들었고, 매 시즌 ‘빌런’(악당)을 등장시켜 화제몰이에 활용했다. 그 과정에서 조작 편집으로 빌런을 만들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빌런으로 몰린 한 지원자가 제작진의 조작 행위를 폭로한 뒤 스스로 하차했다. 그는 최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아직도 당시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며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했다. 어른도 이런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상업성이 떨어지면 아이들의 노력은 가차 없이 내팽개쳐졌다. 2016년 방영한 <소년 24>는 ‘공연돌’(공연장에서 활동하는 아이돌)을 뽑는다는 취지로 <프듀> 시즌1 직후 시작했다. 하지만 화제성이 떨어지자 방영 중간부터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계약서대로 2년간 작은 공연장에서 공연했지만, 형식적이었다. 한 멤버는 <한겨레>에 “방영 중간부터 시청률이 낮다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차라리 탈락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엠넷>은 아니지만, <제이티비시>에서 방영하고 와이지(YG)가 제작한 <믹스나인> 역시 화제성이 떨어진데다 계약을 둘러싸고 기획사와 와이지 간 의견이 갈리면서 아이들은 데뷔조차 못 했다.

‘프듀 시리즈’ 조작 피해 역시 아이들이 떠안고 있다. <프듀 48>과 <프듀 엑스(X) 101>로 선발된 아이즈원과 엑스원의 활동은 사실상 중단됐다. 아이즈원은 새 음반 발매가 보류됐고, 녹화를 마친 프로도 편집됐다. 누리꾼들은 탐정이 되어 조작 멤버를 파헤치기 바쁘다. 포털 검색어에는 ‘아이즈원 조작 멤버’라는 연관 검색어가 따라다닌다. 선발된 아이들에게는 이 모든 비난이 상처로 남게 된다. 멤버들이 조작 여부를 알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알았더라도 그걸 거부하지 않았다고 누가 탓할 수 있을까. 어른들의 불공정한 거래로 탈락한 아이들의 상처는 당연히 더 깊다.

조작이 밝혀진 뒤에도 달라지지 않는 <엠넷>을 보면 참담한 마음마저 든다. 이들은 또 다른 10대 경연 프로 <10대 가수> 제작을 강행하고 있다. 쏟아질 비난을 모르지 않는데도 아이들의 꿈을 볼모 삼아 또 다른 경연을 준비하는 건 10대 콘텐츠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씨제이이엔엠의 한 예능 피디는 “욕하면서도 지원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아이들은 또 지원하고 있다. 어쩌면 ‘프듀’ 새 시즌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지원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조작이든 아니든 경연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얼굴을 비출 수 있는 절실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걸 아는 어른들이 그런 마음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요즘 인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초등학생 필구는 아이들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는 어른들에게 말한다. “어른들이 왜 그래요? 어른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어른들이 그러면 안 된다.

남지은 ㅣ 문화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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