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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3 18:15 수정 : 2019.11.04 14:18

노현웅

<한겨레> 경제팀 기자

지난주 공표된 비정규직 통계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통계청은 해마다 8월 기준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파악해 통계를 공표하는데, 지난해 661만4천명에 머물던 비정규직이 올해 748만1천명으로 87만명 가까이 늘면서다. 보수 언론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다고 공격했다. 통계청은 국제노동기구(ILO) 권고에 따른 병행조사를 시행한 결과, 스스로 비정규직임을 자각하게 된 노동자가 35만~50만명에 이른다고 패널 분석에 의한 추정치를 밝혔다. 숨어 있던 비정규직이 추가로 포착돼 지난해와 직접 비교하긴 어렵다는 뜻이다.

하나씩 따져보자. 먼저 병행조사의 효과다. 통계청은 올해 3월, 6월에 병행조사를 시행한 결과 그때마다 수십만명씩 비정규직이 급증했다는 논거를 댔다. 실제 병행조사 전인 2월에 25만명 수준이었던 비정규직 증가 폭은 3월에 50만명대로 뛰었고 그 뒤로 비슷한 추이를 유지하다, 6월에 또 80만명대로 뛰었다. 숫자를 보면 병행조사 실시에 따라 비정규직 규모가 부쩍 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87만명 모두를 이 기간 ‘순증’한 비정규직으로 보긴 어렵다는 뜻이다.

병행조사 효과로 새로 파악된 숨은 비정규직(35만~50만명)을 제외하면 비정규직 증가 폭은 37만~52만명에 달한다. 적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폭증이라 평가하기도 어정쩡하다. 지난해 8월엔 취업자 수가 3천명 늘어나는 동안, 비정규직이 3만6천명 늘었다. 올해 8월에는 취업자가 45만2천명 늘었다. 취업자 증가 폭이 커지면 비정규직도 많이 늘어나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다.

여기에 노인 빈곤을 완화하기 위한 사실상의 복지사업인 노인 일자리 규모가 전년보다 13만명가량 늘었다. 단기 일자리인 이들은 비정규직으로 분류된다. 고령화 등 인구구조의 변화로 60살 이상 고용률은 갈수록 높아진다. 경력단절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도 높아지는 추세다. 이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기까지 정부 쪽 설명은 합리적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맥락을 모두 자른 채 비정규직이 급증했다고 윽박지르는 일은 통계 분석을 넘어선 ‘정치 행위’에 가까워 보인다. 노벨상을 받은 영국의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는 “데이터를 충분히 고문하면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있다”며 통계 해석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이제 정치적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다시 통계를 보자. 정부와 보수 언론이 숫자 공방을 벌이는 동안, 정작 노동계는 비정규직 증가를 ‘환영’하는 논평을 내놨다. 부정확했던 비정규직 통계가 그나마 조금 더 현실에 다가섰다는 것이다. 통계청 설명대로 겨우 질문 하나를 추가한 것만으로 비정규직이 최대 50만명 증가할 정도로 허술한 인식 틀로, 그간 정부는 비정규직 대책을 마련해왔다는 뜻인가.

노동계에서는 여전히 누락된 비정규직이 많다고 보고 있다. ‘긱 이코노미’(임시직 선호 경제) 등장으로 급증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가 대표적이다. 사내 하청, 소사장제 등 비정규직으로 분류돼야 하는 간접고용도 통계에는 빠져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등은 통계청과 별도로 비정규직 규모를 추산하는데, 아직도 공식 통계와는 수백만명 격차가 있다. 제대로 알아야 대책도 마련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비정규직 통계는 더 급증하는 게 옳다.

무엇보다 이번 통계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가 저성장·고령화 추세에 따라 점점 더 해결이 어려운 형태로 구조화하고 있다는 진실을 알려준다. 하긴 대법원 확정판결도 무시하고 정규직화를 거부하는 공공기관이 있는 마당에 비정규직 문제가 개선될 리 있을까.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통계를 둘러싼 ‘경합하는 진실’ 가운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숫자 속에 머무는 이들의 이름이, 구의역 김군, 제주의 이민호, 태안의 김용균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통계를 통해 노동을 관찰하지만, 그게 사람을 숫자화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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