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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24 17:33 수정 : 2019.09.25 08:50

게티이미지뱅크

셈의 계절이 다가온다. 나라 살림 얘기다. 이달 초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예정대로라면 국회 심의를 거쳐 12월 초에 확정될 터다. 눈여겨본 건 성인지 예산이다. 이는 국가 재원이 성차별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사용되는지 평가하는 제도로 각 부처는 성평등 목표, 성별에 따른 효과를 분석해 일부 사업을 성인지 예산에 포함한다.

내년에 편성된 성인지 예산은 총 31조7963억원이다. 올해보다 무려 25.1% 늘었다. 그런데 속살을 들여다보면 어째 뒷맛이 씁쓸하다. 교육부가 109억원을 편성한 ‘장애학생 교육지원사업’은 “성인지적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여성 장애인의 역량 강화 및 사회 참여를 위한 기반 제공”을 목표로 하는데, 최근 3년간 사업 수혜 대상자의 여성·남성 비율은 3 대 7로 남성에 치우쳤다. 행정안전부는 ‘민방위 교육 훈련 및 시설장비 확충’ 사업예산 87억원을 성인지 예산에 포함했는데, 전체 민방위 대원 약 359만명 가운데 여성 지원자는 4만여명으로 1.2%에 그친다. 시행 대상도, 수혜 비율도 기존의 불균형을 그대로 반영하는데 과연 어떤 차별을 개선할 수 있을까? 난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성인지 예산의 실효성 논란은 반복돼왔다. 성과목표 달성률은 60∼70%대로 매년 실적이 저조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무관심의 합작품이다. 미흡함의 책임을 국회와 정부는 서로한테 떠넘긴다. 국회에선 “각 부처에 예산 편성 지침을 내리는 기획재정부가 꿈쩍 않는다”는 말이, 정부 쪽에선 “의원들이 관심이 없어 심사가 제대로 안 된다”는 말이 나온다. 의무 편성 비율도, 촉진 동력도 없다 보니 상징적 지표에만 그친다. 성인지 예산은 ‘성평등’이란 의제가 정치권에서 어떤 위치인지 보여주는 바로미터인지도 모른다.

이런 무관심이 180도 뒤집힐 때가 있다. ‘젠더 갈등’이 등장할 때다.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데 화들짝 놀라서다. 한쪽은 떨어진 지지율 회복을 위해, 다른 한쪽은 이를 역으로 이용하기 위해 시시때때로 젠더 갈등 프레임을 정치적 셈법에 동원한다. 표심이 흔들리니 ‘성평등’을 찾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화살은 오로지 여성가족부로만 향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열린 이정옥 여가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한 여당 의원은 “지금 젠더 갈등이, 20대 남성들에게 여가부에 대한 반감으로 연결되고 있다”며 갈등의 원인과 해법을 모두 여가부의 몫으로 돌렸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왜곡된 정보와 의견을 답습해가며 여가부를 공격하는 데만 혈안이 된 야당 의원도 있다.

성평등에 대한 성별 간 인식 차를 부정하자는 게 아니다. 갈등의 원인을 근본부터 다시 짚자는 거다. 이는 20대 남성이 왜 스스로를 약자로 인식하는지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들은 “강하고, 성공해야만 하고, 위계질서에 복종하는 ‘전통적인 남성성’에 동의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는 집단”(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다. 이들의 ‘역차별’ 주장 뒤엔 “공정함을 ‘노력에 대한 차등적 보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사회적 재분배 이슈는 결과를 조정하려는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취급하는”(전효관·김수아·김선기, 정책기획위 ‘젠더 갈등을 넘어 공존의 모색’ 토론회) 인식도 깔려 있다.

이들의 목소리에 누가 제대로 귀를 기울여봤나. 지난해 연내 통과를 전망했던 청년기본법은 또 감감무소식이다. 성차별 개선을 위해 쓰라는 예산은 10년 넘게 헛바퀴만 돌고 있다. 젠더 갈등에 호들갑을 떨며 여가부를 비난하는 이들의 발언이 ‘비겁한 변명’으로만 들리는 이유다. 노르웨이는 성평등을 위한 남성의 책임 강화를 추구하는 ‘리폼’센터를 국가가 운영한다. 차라리 여가부를 ‘성평등부’로 확대 개편하고 예산을 여기에 대폭 투입하는 건 어떤가. 젠더 갈등이 정말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상상력의 셈이라도 굴려보자는 얘기다.

박다해
사회정책팀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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