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팀 기자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태를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조 후보자 딸을 둘러싼 의혹 제기와 이에 대한 반응을 보며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하나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공정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요구가 훨씬 더 엄정해졌구나, 새삼 깨달았다. 얼마 전 대중문화계에서 공정성과 관련해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엑스 101>에 조작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을 서열화·상품화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탄탄한 인기를 얻으며 여러 시즌을 이어왔다. ‘국민 프로듀서’를 내걸고 100% 시청자 투표로만 선정한다는 점이 주된 인기 요인이었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연습생을 내 힘으로 아이돌 스타로 키울 수 있다는 점에 열광했다. “너무 억울해요. 이것 좀 봐주세요.” <프로듀스 엑스 101> 최종 11명이 선정된 이후 지인이 연락해왔다. 제작진이 공개한 최종 투표 결과를 보면 순위 간 표차에서 일정한 패턴이 발견된다며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응원하는 연습생이 떨어져서 속상한 일부 시청자들의 볼멘소리겠거니, 이러다 말겠지 싶었다. 아니었다. 사람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고 진상규명위원회까지 꾸렸다. 결국 경찰 수사로 이어졌다. <프로듀스 101> 전 시즌과 <아이돌학교> 등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으로까지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신분제가 폐지된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계급 상승의 수단으로 떠오른 것 중 대표적인 게 대학 입시와 아이돌 오디션이다.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입시에 사활을 걸고, 돈과 인기를 거머쥘 수 있는 아이돌 스타가 되기 위해 고된 연습생 생활을 마다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면 그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사람들이 최근 두 사태에 유독 열을 올리는 건 그 믿음이 깨졌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지점에 눈이 간다. 고려대·서울대 학생들의 촛불집회보다 내 눈길을 끈 건 청년 노동자 공동체 ‘청년전태일’의 문제 제기다. 이들은 조 후보자 딸의 입시 의혹보다도 근본적으로 계급 고착화 문제를 지적한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학력을 통해 세습되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흙수저들에게도 공정한 사회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로듀스 엑스 101> 최종 11명으로 꾸린 엑스원은 경찰 수사와 ‘조작돌’이라는 비아냥 속에서도 지난달 27일 데뷔했다. 데뷔 앨범은 초동 판매로만 50만장을 넘기는 대기록을 세웠다. 방송의 힘을 절감했다. 이틀 뒤인 29일 서울 종로의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를 찾았다. 이날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불빛 아래서>를 보기 위해서였다. 조이예환 감독은 2012년부터 로큰롤라디오, 웨이스티드 쟈니스, 더 루스터스 등 세 인디밴드를 카메라에 담아왔다. 다들 촉망받는 밴드였다. 로큰롤라디오는 온갖 경연대회를 휩쓸고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까지 거머쥐었다. 하지만 데뷔 7년차 밴드가 되어서도 여전히 음악만으로 먹고살기 버겁다.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산하 레이블과 계약한 웨이스티즈 쟈니스도 마찬가지다. 막노동을 하며 버티던 더 루스터스는 끝내 해체했다. 로큰롤라디오 드러머 최민규는 말한다.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 뱃사람 같은 거야. 오늘 고기 좀 안 올라온다고 해서 그물 던지는 걸 그만둘 순 없잖아?” <불빛 아래서>는 상영관을 잡기가 힘들었다. 대형 기획사 소속 아닌 음악인의 활동 무대가 손바닥보다 좁은 것처럼 대형 배급사를 잡지 못한 영화에 기회는 공정하게 오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극장 아닌 곳에서 공동체 상영을 하는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에 배급을 맡겼다. 오는 16일부터 부르면 찾아가는 공동체 상영을 시작하는데, 그에 앞서 힘겹게 10여개 관을 잡아 상영 중이다. 미디어와 대형 극장의 무관심 속에 오늘도 인디음악인과 독립영화인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공정성이 절실한 이들이다. westmin@hani.co.kr
칼럼 |
[한겨레 프리즘] 공정성이 진짜 절실한 이들 / 서정민 |
문화팀 기자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태를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조 후보자 딸을 둘러싼 의혹 제기와 이에 대한 반응을 보며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하나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공정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요구가 훨씬 더 엄정해졌구나, 새삼 깨달았다. 얼마 전 대중문화계에서 공정성과 관련해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엑스 101>에 조작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을 서열화·상품화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탄탄한 인기를 얻으며 여러 시즌을 이어왔다. ‘국민 프로듀서’를 내걸고 100% 시청자 투표로만 선정한다는 점이 주된 인기 요인이었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연습생을 내 힘으로 아이돌 스타로 키울 수 있다는 점에 열광했다. “너무 억울해요. 이것 좀 봐주세요.” <프로듀스 엑스 101> 최종 11명이 선정된 이후 지인이 연락해왔다. 제작진이 공개한 최종 투표 결과를 보면 순위 간 표차에서 일정한 패턴이 발견된다며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응원하는 연습생이 떨어져서 속상한 일부 시청자들의 볼멘소리겠거니, 이러다 말겠지 싶었다. 아니었다. 사람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고 진상규명위원회까지 꾸렸다. 결국 경찰 수사로 이어졌다. <프로듀스 101> 전 시즌과 <아이돌학교> 등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으로까지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신분제가 폐지된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계급 상승의 수단으로 떠오른 것 중 대표적인 게 대학 입시와 아이돌 오디션이다.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입시에 사활을 걸고, 돈과 인기를 거머쥘 수 있는 아이돌 스타가 되기 위해 고된 연습생 생활을 마다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면 그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사람들이 최근 두 사태에 유독 열을 올리는 건 그 믿음이 깨졌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지점에 눈이 간다. 고려대·서울대 학생들의 촛불집회보다 내 눈길을 끈 건 청년 노동자 공동체 ‘청년전태일’의 문제 제기다. 이들은 조 후보자 딸의 입시 의혹보다도 근본적으로 계급 고착화 문제를 지적한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학력을 통해 세습되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흙수저들에게도 공정한 사회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로듀스 엑스 101> 최종 11명으로 꾸린 엑스원은 경찰 수사와 ‘조작돌’이라는 비아냥 속에서도 지난달 27일 데뷔했다. 데뷔 앨범은 초동 판매로만 50만장을 넘기는 대기록을 세웠다. 방송의 힘을 절감했다. 이틀 뒤인 29일 서울 종로의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를 찾았다. 이날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불빛 아래서>를 보기 위해서였다. 조이예환 감독은 2012년부터 로큰롤라디오, 웨이스티드 쟈니스, 더 루스터스 등 세 인디밴드를 카메라에 담아왔다. 다들 촉망받는 밴드였다. 로큰롤라디오는 온갖 경연대회를 휩쓸고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까지 거머쥐었다. 하지만 데뷔 7년차 밴드가 되어서도 여전히 음악만으로 먹고살기 버겁다.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산하 레이블과 계약한 웨이스티즈 쟈니스도 마찬가지다. 막노동을 하며 버티던 더 루스터스는 끝내 해체했다. 로큰롤라디오 드러머 최민규는 말한다.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 뱃사람 같은 거야. 오늘 고기 좀 안 올라온다고 해서 그물 던지는 걸 그만둘 순 없잖아?” <불빛 아래서>는 상영관을 잡기가 힘들었다. 대형 기획사 소속 아닌 음악인의 활동 무대가 손바닥보다 좁은 것처럼 대형 배급사를 잡지 못한 영화에 기회는 공정하게 오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극장 아닌 곳에서 공동체 상영을 하는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에 배급을 맡겼다. 오는 16일부터 부르면 찾아가는 공동체 상영을 시작하는데, 그에 앞서 힘겹게 10여개 관을 잡아 상영 중이다. 미디어와 대형 극장의 무관심 속에 오늘도 인디음악인과 독립영화인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공정성이 절실한 이들이다.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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