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팀 기자 검찰 인사 때마다 언론에 등장하는 단어가 ‘특수통’ ‘공안통’이다. 검찰이 인지해 직접 하는 수사나 노동·대공 수사 등에 특화된 검사를 가리킨다. 그런데 ‘공판통’ 검사는 없다. 검찰의 주된 업무는 수사와 공판, 그리고 집행이다. 범죄 의혹이 있는 이를 수사해 법정에 세우고 최선을 다해 유죄를 이끌어내 형을 집행하는 게 검찰 역할이다. 하지만 여전히 검찰 내에서 공판을 이끄는 능력은 수사 능력보다 덜 중시된다. 실제 공판부에는 신임 검사들이 주로 배치되고, 이들은 1년 정도 근무하고 부서를 옮긴다. 이런 상황에서 ‘공판통’ 검사를 기대하기는 요원한 일인지 모른다. 최근 만난 한 검사는 “수사는 두세달 하면 끝이지만 재판은 2~3년 간다”며 “수사 단계에서 나오는 내용은 빙산의 일각이다. 정말 중요한 진술과 증거는 재판에서 쏟아진다”고 말했다. 수사 단계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결정적 진술이나 증거들이 재판에서 대거 공개되는데, 언론이 웬만해선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푸념과 함께였다. 지난 5월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의 결심공판에는 한 계량경제학자가 등장했다. 검찰이 준비한 ‘히든카드’였다. 검찰은 계량경제학자에게 “쌍둥이가 정답이 수정된 문제 중 수정되기 전 답을 동시에 고를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그는 “100만번 중 1.2번”에 불과할 정도로 확률이 낮다고 답했다. 검찰은 쌍둥이의 아버지인 교무부장이 정답을 유출해 두 딸에게 전해줬다는 직접적인 증거물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검찰은 법정에서 계량통계학자와 범죄심리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를 증인으로 불러 혐의점을 하나하나 입증해 나갔다. 결국 쌍둥이 아버지는 징역 3년6개월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4월에는 존속살해 혐의를 받는 ㄱ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사망한 지 오래돼 사체가 부패된 상태로 발견됐고, 부검 결과도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나왔다. 유죄 입증이 쉽지 않은 상태였다. 공판에 나선 검찰은 한 의과대학에서 인체모형을 빌려왔다. 사체에 목이 졸리고 구타당한 흔적이 있다는 부검의의 진술에 따라, 검찰은 부검의로 하여금 인체모형을 활용해 상처 부위와 정도를 구체적으로 진술하도록 유도했다. 결국 검찰은 부검 감정 결과를 배심원들에게 명확히 인식시켜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받아냈다. 외국 영화에서나 보던 법정 내 실험과 공방이 국내 법정에서도 종종 이뤄지면서, 공판 검사들도 치밀한 준비는 기본이고 창의력과 정보전달력 등이 매우 중요해졌다. 공판 검사들이 전문적인 스피치 교육이나 자료 시각화 교육 등을 받고 싶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검찰은 ‘공판 강화’에 중심을 두고, 검사 인사와 대검 시스템 개편 등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특별공판팀’을 설치해 사법농단 재판 등 대형 재판에 대응하고 있다. 사건을 가장 잘 아는 수사 검사들이 공판팀에 다수 배치돼 직접 피고와의 재판에 대응하게 한 것이다. 기소 뒤에는 ‘공판 검사’에게 사건을 넘기고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옛 모습과 대비된다. 대검도 공판 전문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검 공판송무부는 올해 초 만든 ‘공판지원 어벤저스 티에프(TF)’를 기반으로, 현재 국민참여재판 지원팀과 증거분야 지원팀 등으로 나눠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국민참여재판을 모니터링하고, 증거법 관련 분석 등의 방법으로 공판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기소만 잘하면 된다”는 옛 생각으로 공판에 신경쓰지 않던 검찰의 모습은 언론의 취재 관행 탓이기도 하다. 수사 단계에서는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던 사건도, 재판 단계로 넘어가면 관심이 급격히 사라진다. 유무죄 여부를 알 수 없는 사건도 적지 않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취임 때 “배틀필드는 조사실이 아니라 법정”이라며 ‘공소유지’를 강조했다. “○○○ 검사, 조사실이 아닌 법정에서 싸워 유죄를 잘 받아냄, 공판통”이라고 인사 기사를 쓸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godjimin@hani.co.kr
칼럼 |
[한겨레 프리즘] ‘공판통’ 검사를 보고 싶다 / 신지민 |
법조팀 기자 검찰 인사 때마다 언론에 등장하는 단어가 ‘특수통’ ‘공안통’이다. 검찰이 인지해 직접 하는 수사나 노동·대공 수사 등에 특화된 검사를 가리킨다. 그런데 ‘공판통’ 검사는 없다. 검찰의 주된 업무는 수사와 공판, 그리고 집행이다. 범죄 의혹이 있는 이를 수사해 법정에 세우고 최선을 다해 유죄를 이끌어내 형을 집행하는 게 검찰 역할이다. 하지만 여전히 검찰 내에서 공판을 이끄는 능력은 수사 능력보다 덜 중시된다. 실제 공판부에는 신임 검사들이 주로 배치되고, 이들은 1년 정도 근무하고 부서를 옮긴다. 이런 상황에서 ‘공판통’ 검사를 기대하기는 요원한 일인지 모른다. 최근 만난 한 검사는 “수사는 두세달 하면 끝이지만 재판은 2~3년 간다”며 “수사 단계에서 나오는 내용은 빙산의 일각이다. 정말 중요한 진술과 증거는 재판에서 쏟아진다”고 말했다. 수사 단계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결정적 진술이나 증거들이 재판에서 대거 공개되는데, 언론이 웬만해선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푸념과 함께였다. 지난 5월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의 결심공판에는 한 계량경제학자가 등장했다. 검찰이 준비한 ‘히든카드’였다. 검찰은 계량경제학자에게 “쌍둥이가 정답이 수정된 문제 중 수정되기 전 답을 동시에 고를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그는 “100만번 중 1.2번”에 불과할 정도로 확률이 낮다고 답했다. 검찰은 쌍둥이의 아버지인 교무부장이 정답을 유출해 두 딸에게 전해줬다는 직접적인 증거물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검찰은 법정에서 계량통계학자와 범죄심리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를 증인으로 불러 혐의점을 하나하나 입증해 나갔다. 결국 쌍둥이 아버지는 징역 3년6개월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4월에는 존속살해 혐의를 받는 ㄱ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사망한 지 오래돼 사체가 부패된 상태로 발견됐고, 부검 결과도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나왔다. 유죄 입증이 쉽지 않은 상태였다. 공판에 나선 검찰은 한 의과대학에서 인체모형을 빌려왔다. 사체에 목이 졸리고 구타당한 흔적이 있다는 부검의의 진술에 따라, 검찰은 부검의로 하여금 인체모형을 활용해 상처 부위와 정도를 구체적으로 진술하도록 유도했다. 결국 검찰은 부검 감정 결과를 배심원들에게 명확히 인식시켜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받아냈다. 외국 영화에서나 보던 법정 내 실험과 공방이 국내 법정에서도 종종 이뤄지면서, 공판 검사들도 치밀한 준비는 기본이고 창의력과 정보전달력 등이 매우 중요해졌다. 공판 검사들이 전문적인 스피치 교육이나 자료 시각화 교육 등을 받고 싶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검찰은 ‘공판 강화’에 중심을 두고, 검사 인사와 대검 시스템 개편 등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특별공판팀’을 설치해 사법농단 재판 등 대형 재판에 대응하고 있다. 사건을 가장 잘 아는 수사 검사들이 공판팀에 다수 배치돼 직접 피고와의 재판에 대응하게 한 것이다. 기소 뒤에는 ‘공판 검사’에게 사건을 넘기고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옛 모습과 대비된다. 대검도 공판 전문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검 공판송무부는 올해 초 만든 ‘공판지원 어벤저스 티에프(TF)’를 기반으로, 현재 국민참여재판 지원팀과 증거분야 지원팀 등으로 나눠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국민참여재판을 모니터링하고, 증거법 관련 분석 등의 방법으로 공판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기소만 잘하면 된다”는 옛 생각으로 공판에 신경쓰지 않던 검찰의 모습은 언론의 취재 관행 탓이기도 하다. 수사 단계에서는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던 사건도, 재판 단계로 넘어가면 관심이 급격히 사라진다. 유무죄 여부를 알 수 없는 사건도 적지 않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취임 때 “배틀필드는 조사실이 아니라 법정”이라며 ‘공소유지’를 강조했다. “○○○ 검사, 조사실이 아닌 법정에서 싸워 유죄를 잘 받아냄, 공판통”이라고 인사 기사를 쓸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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