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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1 18:02 수정 : 2019.08.12 14:27

이완
정치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장관급 8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한 직후, 오랫동안 재벌개혁 관련 활동을 해온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해 물었다. 재벌개혁 관련 기사를 몇년 동안 써온 기자에게도 조 후보자의 이름은 낯설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포털에 ‘조성욱 교수’와 ‘공정거래위’를 함께 넣고 검색해봤지만, 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되었다는 뉴스 말고는 그가 이전에 무엇을 했는지 알려주는 게시물은 찾기 어려웠다.

전화를 받은 이로부터 돌아온 말은 “누군지 잘 몰라서 말할 게 없다”였다. 조 후보자가 ‘공정거래’와 관련해 그동안 학계나 시민사회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한 게 없어 그가 위원장에 적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그는 “청와대도 공정위원장 후보자를 찾기 위해 꽤 많이 노력한 것으로 안다”며 “청문회에서 어떤 말씀을 하는지 보자”며 말을 아꼈다. 또다른 취재원은 “공정위는 김상조 정책실장이 청와대에서 챙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사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 재벌개혁과 관련해 가장 눈에 띄는 조 후보자의 활동은 재벌의 낙후된 지배구조와 높은 부채 의존도가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했다고 지적한 ‘기업지배구조 및 수익성’(2003년)이란 논문을 썼다는 것이다. 최근 성과도 없고 조직을 이끌 역량도 확인이 안 되니, 대학 1년 선배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과의 인연만 강조된다.

청와대는 이번 인사로 문재인 정부의 2기 내각 구성이 완료됐다고 했다. 새로 온 김외숙 인사수석이 깐깐하게 검증을 해서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문제는 2기 개각에서 ‘조국’과 ‘총선’이라는 열쇳말을 빼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이번 개각의 키워드는 전문성”이라고 했다. 정치인을 빼고 반도체 전문가 등 교수 출신을 중용했다는 뜻이다. 후보자 개개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청문회에서 확인해야겠지만, ‘전문성’이 열쇳말이라는 말은 아리송하다. 무엇보다 ‘전문성’이라는 말에는 철학이 담겨 있지 않다.

세대교체나 학벌 파괴 등의 파격도 없었다. 참여정부 때는 기수를 파괴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나 이장 출신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이 있었다. 다른 나라처럼 40대 총리를 보진 못하더라도 30대 장관은 불가능한 것일까? 장관 후보자 가운데 서울대 출신은 왜 또 이렇게 많을까?

인사는 그 자체로 메시지다. 청와대의 ‘전문성’ 강조는 ‘장관이 될 사람은 그저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전문지식만 쌓으면 된다’는 말처럼 들린다.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하소연도 정부의 ‘인재 풀’이 좁다는 말로밖에 안 들린다. 스포츠 분야로 눈을 돌리면, 선수 시절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지도자가 된 뒤에 빛을 본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청와대가 전문성을 그토록 강조하는 게 혹시 ‘머리(철학)는 청와대에 있으니 부처는 손발 구실만 잘하면 된다’는 뜻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이미 관료 사회에서는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다’는 말이 파다하다. 오죽하면 총리실이 공무원들에게 소극적인 행정을 하지 말라며 ‘적극행정 지원위원회’라는 기구까지 만들었을까. 집권여당의 싱크탱크라는 기구가 한-일 갈등 분석보고서를 내면서 이번 사태가 내년 총선에 미칠 영향 따위나 헤아리고 있는 꼴을 보면 과연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현재 청와대는 3실(비서실, 정책실, 안보실) 8수석 체제다. 사실상 청와대에 또 하나의 내각이 있는 셈이다. 청와대 비서관들은 부처 공무원들과 회의를 매일 수차례 할 정도로 통제력도 강하다. 5년 단임의 대통령제에서 선거 때 내세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강한 청와대 조직이 불가피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과도한 힘의 집중은 반드시 부작용을 부른다. 박근혜·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도 청와대가 국정의 모든 주도권을 틀어쥔 ‘청와대 정부’ 아래서 벌어진 일이다.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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